태국요리부터 동남아 길거리 음식까지
세계 배낭여행객 집합소 "카오산 로드"
개점휴업 중이던 상점·카페 활기 찾아
하룻밤 1만원 도미토리·새벽 수산시장
생동감 넘치는 방콕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태국 특유의 향기를 피워내는 흥미로운 조형물
태국 특유의 향기를 피워내는 흥미로운 조형물

젊은 시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낯선 아시아의 거리를 헤매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지명이 있다. 아니, 비단 배낭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분명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카오산 로드(Khaosan road).

태국 방콕은 인근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묶어 1~2개월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돌아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거점 같은 도시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개별적인 자유여행을 계획한 이들이라면 보통 한국에서 방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가장 먼저 카오산 로드로 간다.

거기서 좀 더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인접국으로 향하는 기차표나 버스표 또는, 배표를 예매하는 게 동남아 배낭여행의 가장 보편적 방법이었다. 몇 해 전 발생한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는.

 

삶의 에너지 넘쳐나는 태국 방콕 인근 수상시장
삶의 에너지 넘쳐나는 태국 방콕 인근 수상시장

□ 300m 남짓 거리가 배낭여행자들로 넘쳐났던 곳이…

방콕공항에서 택시나 셔틀버스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카오산 로드는 어떤 곳일까? ‘위키백과’가 간략하게 그곳을 요약해주고 있다.

“카오산 로드는 태국 방콕 시내 프라나콘 방람푸 지역에 있는 짧은 거리 이름이다. 카오산 로드는 300m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집합소이자 젊은이들의 해방구다.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카오산 로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베이스캠프이기 때문. 이곳에서는 여행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방콕 왕궁과 왓 프라깨우가 있는 1km 북쪽에 자리한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불러온 ‘세계여행 암흑기’의 직격탄을 카오산 로드도 피해갈 수 없었다.

1년 내내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들로 넘쳐나던 그 거리가 인적 없는 유령도시처럼 변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진과 영상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한국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맥주와 커피를 마시고, 태국 요리부터 인근 동남아시아 길거리 음식까지 맛볼 수 있었던 카오산 로드.

자정을 넘겨 새벽에도 꺼지지 않던 거리의 불빛이 사라진 카로산 로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다행히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3년 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국을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카오산 로드 역시 개점휴업 상태이던 상점과 카페들이 하나둘 활기를 찾아가며 야간 영업시간 확대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기자 역시 배낭여행을 즐기던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대여섯 차례 이상 방문한 곳이 카오산 로드다. 당연지사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여럿 만들었다.

 

태국에선 거리와 상점, 심지어 술집에서도 불상을 만날 수 있다
태국에선 거리와 상점, 심지어 술집에서도 불상을 만날 수 있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일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 하나를 만났다. 태국은 물론,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네시아를 거치며 3개월째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3개월쯤 더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말로 기자를 놀라게 했다.

사실 여행은 인생의 교과서로 역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아니, 늦게 알았다기보다는 알고 있다고 해도 해외여행이 수월치 않았다.

이른바 MZ세대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멀리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는 게 놀랍고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 이전 세대는 달랐다.

지금 50대 이상인 한국인들에겐 여권을 발급 받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처럼 인식됐다. 그보다 이전엔 돈이 있어도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적지 않은 한국 젊은이들도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를 자기 동네 뒷산 드나들듯 가기 시작했다. 그 추세는 속도를 더했고, 이제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을 보기 어려울 지경.

□ 몸 추스르고 여행자 맞기 시작한 ‘카오산 로드’

코로나19가 불청객처럼 찾아와 세상을 흉흉하게 만들기 1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18년 카오산 로드를 찾았다.

거기서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한 청년과 술잔을 기울였다. 스물셋. 2000년대 초반 만났던 와세다대학 청년과 같은 나이였다.

“도서관이 아닌 낯선 세상에서 인생 공부를 해보고 싶어 여름방학 내내 공사장에서 힘든 일을 해 300만 원을 모았다”는 대구 청년은 “돈이 바닥날 때까지 동남아시아 곳곳을 떠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

전공서적이 아닌 낯선 풍경과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그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

이미 생활인으로 몸과 마음이 굳어진 중년들과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확연히 달랐다.

카오산 로드의 매력은 앞서 언급한 일본 청년과 한국 청년 같은 이들이 뿜어내는 젊음의 에너지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아시아의 청년들만이 아니다. 그곳에선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가슴 안에 간직한 싱싱한 꿈과 희망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카오산 로드로 몰려드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청년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면 아시아 배낭여행 시장의 회복 가능성도 점칠 수 있을 터.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비 내리는 카오산 로드 풍경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 비 내리는 카오산 로드 풍경

앞서도 말했지만 카오산 로드는 단순한 방콕의 한 거리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행의 가장 주요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카오산 로드엔 저렴한 숙소가 많다. 하룻밤 1만 원 정도의 허름한 도미토리에서 깨어나 새벽부터 문을 여는 수상시장에서 힘겹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콕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 다른 환경과 제도 아래서 살아온 세계 여러 나라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친구가 돼보는 것.

바로 이런 게 책에선 배울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살아있는 세상 공부’가 아닐까.

그래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카오산 로드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더없이 반갑다. 여행 속에서 인생을 배워가려는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그 거리에 활력이 더해가기를 바란다.

□ 보다 행복한 여행을 위해선 현지인들과 친해져야

태국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불교신자다. 인도에서 생겨나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로 전파된 소승불교(小乘佛敎)는 무엇보다 개인의 해탈을 중요시한다. 알다시피 불교는 욕망을 버리는 수양을 통해 성숙에 이르고자 하는 종교.

크고 작은 방콕의 사원에선 조용히 머리 숙이고 부처 앞에서 합장하는 적지 않은 태국인들을 볼 수 있다. 비단 사원에서만이 아니다. 불교는 태국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생활의 일부가 돼있다.

상점과 카페, 심지어 술집과 거리에서도 불상을 볼 수 있는 곳이 태국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불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독실한 종교적 자세는 보통의 태국 사람들을 겸손하고 선량하게 만든 듯했다.

여러 차례 태국을 여행하면서 겪고 본 바에 따르면 태국인들은 크게 고함을 치며 치고받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태국 사람들의 보편적 성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여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단 여행자와 여행자 사이에서만이 아닌,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도 그 기회는 존재한다.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태국 파타야 해변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태국 파타야 해변

처음 낯선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현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진심을 전하기도 어렵다. ‘혹시 저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치면 어떡하나’ ‘어두운 골목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불량배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닫힌 마음과 지레짐작의 두려움으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어느 나라에나 나쁜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세상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다수가 아닐까. 태국도 마찬가지다. 먼저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물건 가격을 흥정하고, 예의를 지켜 길을 묻는 여행자에게 해를 끼치는 현지인은 드물 터.

그러니, 마음을 열고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게 한층 즐거운 태국 여행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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