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태수필가
조현태
수필가

선천성 일안실명이란 의학용어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말이다. 필자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처음부터 한쪽 눈은 멀쩡했으므로 무엇이든지 볼 수 있고 크기와 색깔 구분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면서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글 읽기였다. 동화책을 비롯하여 만화,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편했다.

단 한 가지, 어떤 물체와의 거리감을 식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서야 느꼈다. 친구들과 유료탁구장에 갔는데 탁구 게임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탁구공이 내 쪽으로 얼마만큼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똑바로 보면서 공을 받으려 해도 자꾸 라켓을 허투루 휘둘렀다. 거의 울면서 이를 앙다물고 연습해도 별 진전이 없었다. 축구이든 탁구이든 왜 그토록 공을 맞히지 못하는지는 더 커서야 알았다. 동물의 눈이 둘인 것은 바로 이 거리감 식별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일안실명인 사람은 군대도 면제요 운전면허도 제한을 받으며 굴삭기 같은 중장비면허도 자격미달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애꾸라는 이유로 연애도 취업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한쪽 눈이 없다는 사실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어느 대학병원 안과에서 의안 수술을 했다. 그리고는 양쪽 눈이 다 있는 것처럼 이력서를 제출하여 용접공으로 취업했다. 겨우 일 년 남짓 용접공 월급을 받다가 자영업을 택하고 말았다.

오늘 필자가 하려는 말은 개인의 일생 소개가 아니다. 피트니스 선수였다는 여인이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끝내 왼팔을 절단하고 일 년 넘게 입원치료를 했단다.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듭하여 겨우 퇴원하고 수 년 동안 걷기 같은 일상생활 훈련을 거쳐 텔레비전에 강사로 나타나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그 사고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으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감사함’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였는데 왼팔만 없어졌음에 감사하다는 마음가짐.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여기에 나열하기보다 한 가지 핵심적인 말을 듣고 감동하였기에 이 글을 쓴다.

그녀도 없어진 왼팔을 대신하여 의수를 했단다. 그러나 화면에는 없는 팔 그대로 연설했다. 온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서 의수를 집에다 두고 외팔로 출연한 까닭이 있단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면서도 의수를 주문하게 된 원인은 자기기준을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면 남의 기준에 맞추려는 태도란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다’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녀의 없어진 팔이나 원래 없는 필자의 눈을 있는 것처럼 가짜로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남의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남이 보기에 진짜처럼 보여도 기실 진짜가 아님은 본인이 가장 확실하게 알지 않는가.

자기 기준이 명확하면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온통 아귀다툼으로 뉴스가 종일 시끌벅적한데 남의 기준에 너무 민감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