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아시아와 유럽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스탄불.

이른바 ‘코로나19 사태’가 2년을 넘겨 3년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바이러스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전염병 유발체’가 아닌 ‘감기처럼 누구나 언제든 감염될 수 있는 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번지던 2020년 초반에는 국가들마다 국경의 빗장을 닫아걸고 외국인의 출입을 막았다. 예외인 나라가 드물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당수의 국가가 나라 밖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추세.

사실 어떤 극악한 바이러스도 ‘내가 사는 이곳이 아닌, 가보지 못한 낯선 공간을 여행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온전히 막을 수는 없다.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는 해외여행객들은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도 가까운 나라건, 먼 곳이건 외국을 찾았다. 관광객들의 해외여행 욕구는 연휴가 이어질 추석에도 통제되지 못할 듯하다.

“1~2년에 한 번쯤 다녀오는 외국 여행이 지루하고 무료한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위드 코로나 시대’는 어쩔 수 없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아직은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 외국으로의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코로나19의 그늘이 보다 명확하게 걷히는 게 확인된다면 다시금 비행기를 타려는 이들이 공항을 채울 터.

‘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해도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로 바이러스 감염의 가능성을 낮추는 건 중요한 일. 그걸 염두에 두고 몇 해 전 다녀온 튀르키예 여행을 추억하며, 아주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준비해본다.

 

‘칠면조’·‘비겁한 사람’ 뜻 담긴
공식 영어 표기 ‘터키(Turkey)’
지난 5월 새이름 ‘튀르키예’로
중세부터 뛰어난 용맹성 과시
한국戰때도 파병 전사자 ‘최다’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도 높아
배로 넘나들며 즐기는 이스탄불
고대 로마 유적 남은 파묵칼레
‘노아의 방주’ 아라라트 산까지
기차·버스 이용 즐기기에 좋아

이스탄불에서 맛본 멸치튀김 요리.
이스탄불에서 맛본 멸치튀김 요리.

□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튀르키예 노인들

아직까진 ‘터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나라 튀르키예는 2022년 5월 그들 국가의 명칭을 바꿨다. 공식 영어 표기가 수정된 것이다. 터키(Turkey)는 영어로 칠면조라는 뜻이 있고, 또한 속어로는 ‘비겁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니, 과거 한때 아시아와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용감한 민족’으로 스스로를 말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터키’라는 국호가 기분 좋게 들릴 리 없었다.

실제로 튀르키예인들의 용맹성은 중세의 정복전쟁만이 아닌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에서도 발휘됐다. 속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튀르키예 군대에는 ‘작전상 후퇴’라는 게 없다고 한다. 무조건 돌격해 적이 굴복하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군대는 우리 땅 곳곳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6·25 한국전쟁 때 파병된 군인 숫자 대비 전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도 튀르키예라고 한다.

몇 해 전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는 한국전쟁 파병용사를 만나기도 했다. 이스탄불을 출발해 이란에서 가까운 튀르키예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 70대 노부부가 기자와 같은 침대칸에 탑승했다.

할아버지는 함께 기차에 오른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볼 때마다 웃었고, “우리는 형제”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30시간쯤을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큼직한 빵과 할머니가 깎아주는 사과도 여러 개 얻어먹었다.

비단 그 노부부만이 아니었다. 한 달쯤의 튀르키예 여행에서 “한국은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들이 때마다 홍차와 달콤한 튀르키예 과자를 권하는 건 하나의 정해진 수순 같았다.

여행의 즐거움 중 절반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선물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튀르키예 여행은 한국인들에게 즐거움의 50%를 미리 보장해주는 여정이 아닐지.

최근 몇 년 사이 튀르키예는 폭등하는 물가와 경제 성장 둔화로 적지 않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차에서 만난 친절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하기를 빈다.
 

튀르키예 중부에선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만날 수 있다.
튀르키예 중부에선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만날 수 있다.

□ 아시아·유럽 경계 지역에 위치… 다양한 볼거리가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기에 두 대륙의 특성과 매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수도인 앙카라와 경제 중심지 이스탄불에서는 도시에서의 세련된 삶을 지켜볼 수 있고, 이란·아르메니아 등과 가까운 동부는 한국의 1970년대 같은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2주를 이스탄불에 머문 기자는 거기서 독특한 체험을 했다. 그 도시는 유럽지구와 아시아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두 지역을 넘나들려면 10~20분간 배를 타야 한다.

한국의 버스 요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이스탄불의 여객선들.
 

튀르키예 전역엔 크고 작은 모스크들이 수없이 많다.
튀르키예 전역엔 크고 작은 모스크들이 수없이 많다.

해변에 세워진 모스크와 고딕풍 건물들도 꽤나 인상적이라 관광객들은 배에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배 위에선 500원 정도면 마실 수 있는 홍차를 독특한 모양의 잔에 담아 판매한다.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걸 마시는 재미도 놓치면 아쉽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느긋해 보였다. 여행지에서 파는 엽서에 곧잘 등장하는 갈라타 다리 위에서 하루 종일 조그만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튀르키예의 이색적인 여행지는 이스탄불 외에도 숱하다. 카파도키아와 괴레메에서는 바위를 뚫어 만든 독특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체험이 가능하다.

고대 로마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파묵칼레 역시 튀르키예에 간다면 꼭 찾아봐야 할 곳.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인 안탈리아 역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다.

조금 더 모험심을 가진다면 튀르키예 동쪽 끝자락에 있는 도우베야지트도 방문하지 못할 게 없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 도시엔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아라라트 산이 있다.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도우베야지트에선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양고기는 물론 낙타고기로 만든 요리도 먹는 게 가능하다.

낙타고기 맛은 어땠냐고? 지방이 적은 소고기를 먹는 것과 비슷했다. 여기에 더해 조그만 축제에서 본 쿠르드족의 애잔하고 슬퍼 보이는 전통춤은 잊기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튀르키예 소도시의 버스터미널.
튀르키예 소도시의 버스터미널.

□ 큰 나라지만 비행기보다는 기차와 버스로 여행을

고속열차가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를 2시간 30분이면 달리는 한국. 이와 달리 튀르키예의 기차는 느리다. 하지만, 20세기풍의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기기도 한다. 튀르키예 서쪽 끝인 이스탄불을 출발해 동쪽 도시들을 향해 가는 기차는 2~3일을 숨 가쁘게 달려 목적지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예전엔 그 기차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도 갔었다고 한다.

며칠간 기차 안에서 잠을 자는, 한국에선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는 게 가능한 곳이 튀르키예다. 기차 식당칸에서 튀르키예 전통요리를 맛보며 시원한 에페스 맥주 한잔 하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아나톨리아 평원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국토가 넓고 관광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국가인지라 튀르키예는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기자가 갔었을 때는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직업을 가진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절대다수가 남성인 버스 안내원이 바로 그들.

버스 안내원은 물과 음료수, 간단한 먹을거리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보니 그런 서비스가 생겨난 것 같았다.

튀르키예어를 하지 못한다고, 영어가 서툴다고 기차와 버스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을 서먹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몸짓과 간단한 인사말만으로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튀르키예인들이니까.

근사한 풍광과 맛있는 음식,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반기는 튀르키예로 다시 떠날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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