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교육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여부를 놓고 시름이니, 박사학위 표절부정 시비로 나라가 시끄럽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면서 정작 우리는 교육을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육의 시작점과 끝점이 한꺼번에 걱정거리가 되는 일은 나라의 교육이 처한 자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치원과 박사학위. 언제 공교육을 시작할지는 어린이들의 평균적 발달상태를 세심하게 살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학문적 성숙상태를 철저하게 검증하여 수여하는 박사학위는 지난한 수학과정의 종착점으로서 진중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

초등교육의 근간에 손을 대면서 장관과 대통령이 섣불리 결정하여 진행할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교육정책의 변화는 숙고와 토론, 조사와 검증을 거쳐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교육이 경제라는 식의 도구적 접근도 위험하지만 교육의 진행과정을 삽시간에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간주했던 장관과 대통령의 인식에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철회수순을 밟는 듯하여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교육을 다루는 태도에 신중함을 명심하기 바란다. 사안의 심각함에 반하여 시도교육청들이 비교적 조용하였던 일도 우리 교육의 자리를 걱정하게 만든다. 교육계가 교육을 바라보는 태도도 돌아보아야 할 터이다.

대학이, 표절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드러난 사안에 대하여 ‘문제없다’고 발표하였다. 특정 대학의 부끄러움을 넘어 나라의 고등교육이 백척간두에 섰다. 표절과 오역이 넘쳐흐르는 논문에 그같은 판정을 하여 박사학위를 인정하였다. 해당 논문을 처음 심사하였던 교수들은 물론 다시 검증하였다는 인사들의 책임이 크다. 학문의 완성도를 확인해야 하는 박사학위 수여과정이 도둑질을 허용한 꼴이 아닌가. 해당대학 공동체에서 재검증을 요청한다고는 하지만, 교육계와 대학 일반이 이에 비교적 조용한 까닭은 무엇인가. 대학의 위신과 학문의 신성함은 정권의 향배나 의중과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

오늘 교육이 위태로우면 내일 나라는 불안하다. 초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함께 문제가 붉어진 오늘, 교육에 관하여 우리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특단의 각성에 이르러야 한다.

어린이들의 교육을 가벼이 보았음을 고백하여야 하며 박사학위도 무겁게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하여야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생계의 수단쯤으로 여겨 그리 신중하지 않았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교육을 맡지않은 이들이 교육을 가볍게 대하여도, 미진하게 반응하여 교육이 교육답지 못한 자리까지 밀려나도록 방치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초등교육은 소홀히 대하고 박사학위는 돈으로 주고받는 우리 교육의 민낯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린이 교육을 무겁게 인식하고 박사학위의 진중함을 회복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며 학문의 위신이 걸린 일이다. 유치원에서 박사학위까지 교육의 모든 통로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새겨야 한다. 교사와 학교, 교육청과 교육계는 교육을 대하는 태도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교육이 스러진 곳에 싱싱한 내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