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보도 가에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이 사람 마음을 흔든다. 뉘라서 저 장미꽃들의 향연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내 시선은, 낮은 곳 구석진 곳에서 또 다른 오월을 밝히고 있는 쪼그만 노랑 꽃에 더 머문다.

내일이면 생명 찬란한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보도 곁 잔디잎들은 절반쯤 누렇다. 가뭄 타나 보다. 그런데 잔디 사이에서, 이 목마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노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씀바귀꽃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하면서도, 씀바귀는 움츠러들거나 가물 타지도 않고 해맑은 얼굴로 모두를 반긴다. 잔디도 씀바귀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 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다정하게 보일 수 있겠는가.

그뿐 아니다. 도심의 씀바귀는 정원에서, 보도와 담벼락 사이에서, 보도블록 사이 틈에서, 심지어 슬래브 집 옥상 구석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살아내며 꽃피우고 있다. 겉보기에는 잎과 줄기와 꽃도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강인하다. 저 강인한 생명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씀바귀의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다 식용으로 또는, 약재로 쓰는가 보다.

씀바귀는 흰 꽃이 피는 종 등 비슷한 몇 가지가 있으나,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다. 사람이 먹으면 혈관 건강, 항암효과, 간 기능개선, 면역력 강화, 노화 지연 작용을 한단다. 또 골다공증 예방, 빈혈 방지, 위장 건강, 당뇨 예방, 신경안정 같은 역할도 한다고 한다. 만병통치약 같다. 알고 보니, 씀바귀는 사람에게 무척 이로운 보물이었다.

어느 날, 꽃 지고 여문 씀바귀 씨앗은 갓털 비행기에 타고 바람 따라 도심까지 날아왔으리라. 바람과 땅, 건물과 가로수, 풀, 도로 등 도시의 온갖 것과 합심하여 흙이나 먼지가 있는 틈과 공간에 착륙했을 터이다. 절망스러운 도심의 척박한 환경을 꿋꿋이 이기며 싹터 자라나, 앙증스러운 노란 꽃을 많이도 피워낸 씀바귀….

씀바귀는 어찌하여 도시로 분가했을까. 푸른 산과 들, 냇가, 강가 다 두고 깡마른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와 정착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바람 타고 날아와 물리력으로 내려앉은 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으리라. 자연현상 하나도 그 원인과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지니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면, 도심 곳곳 하찮게 보이는 장소에 퍼져 나지막하게 자라는 씀바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2022 지방선거 공식 운동 기간이다. 선거를 앞둔 기간에, 웬일로 눈길이 자꾸 노란 씀바귀꽃에 가는 걸까. 도시의 낮은 곳, 구석진 곳 혹은, 다른 풀, 나무들과 어우러져야만 살 수 있는 곳에 태어나 자라나서 촛불처럼 어둠을 비추는 얼굴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척박한 환경 이겨내고 꽃피워 5월을 밝히는 씀바귀. 태생이 사람이나 초식동물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여 자기를 먹는 자를 살리는 존재….

문득, 노란 씀바귀꽃 얼굴이 바람에 나부끼며 수줍은 아이처럼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다.

“그래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일꾼들은 우리 씀바귀 같아야만 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