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英 ‘부커상 최종 후보’ 소설가 정보라
소설집 ‘저주토끼’, 英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올라
“사회적 부당한 일 대신 분노·복수 해주고 위안 주고 싶어
2020년 포항에 정착…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쓰고파”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소설가.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소설가.

“사람의 삶은 다양하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각자 모두 다르므로, 세상을 보는 방식은 사람들의 숫자만큼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다양한 관점과 삶을 살아가는 서로 다른 방식들을 이야기로 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관점을 조금 바꾸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이지요.”

최근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지명돼 화제가 되고 있는 정보라(46·포항시 남구 송도동) 작가.

서울 출생인 정 작가가 지난 2020년 8월부터 포항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보라 작가는 2018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 노르웨이의 욘 포세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수상을 놓고 겨룬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 수상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 작가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부커상 최종 후보로 올라 세계적 작가 명성을 얻었다. 소회를 듣고 싶다.

△여전히 현실감이 없고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심사위원님들께서 그렇게 결정하셨으므로 기쁘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대단히 영광이다.

-‘저주토끼’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저주토끼’는 2017년에 출간되었고 옛날얘기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 호러, SF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집이다. 10개 단편 중에서 유일한 SF인 ‘안녕 내 사랑’을 가장 좋아한다. 예전에 수업(연세대 인문학부 시간강사)할 때 학생들하고 이야기하다가 발상을 얻었기 때문에 특히 마음에 남는다.

-과학소설(SF)과 환상문학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SF작가로 불러도 좋은가.

△저 자신은 호러나 환상문학을 더 잘 쓴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를 맡고 있으니 SF작가가 맞는 것 같다.

-‘저주토끼’에 대해서 주변이나 평론가, 소설가, 심사위원회는 어떻게 평가하나.

△‘재미있다, 무섭다’는 평을 많이 들었고 독자분들 중에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이라고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소설가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민담이나 전설, 옛날얘기를 아주 좋아했고, 옛날얘기처럼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대학 때 러시아 낭만주의 소설들을 읽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가 없어진 사람, 죽은 할머니가 나타나서 반드시 이기는 카드게임의 비결을 알려주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고전 명작으로 사랑받는 걸 보고 환상적이고 이상한 이야기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나도 써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읽어서 재미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견디기 어렵고 무의미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나.

△힘들고 외로운 이야기에도 결말이 있다. 어떻게든 주인공이 헤쳐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위안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편 ‘저주토끼’에서는 사회적으로 부당한 일을 겪은 분들에게 소설 속에서 상상으로나마 대신 분노하고 복수를 해줌으로써 위안을 드리고 싶었다. 상상이기 때문에 좀 부담 없이 자유롭게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20세기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작품 ‘구덩이’를 가장 좋아한다.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그러면서도 아주 독특하고 기이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런 독창적인 관점과 인간적인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을 나도 본받고 싶다.

-K-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인은 흥의 민족이고, 엄청나게 다양한 장르와 내용을 즐겁게 잘 만드는 사람들이다. 한강 작가부터 ‘오징어 게임’과 방탄소년단까지 모든 콘텐츠를 사회와 국가가 장르 가리지 말고 존중하고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작가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꿈은 지금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 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부커상 수상작은 5월 26일에 가려진다. 수상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지.

△어느 분이 수상하든 모두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평생의 영광이다. 욕심내지 않고 겸허하게 결과를 맞이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창작과 번역 양쪽 모두 계속 즐겁게 쓰고 즐겁게 번역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서, 저희 작가연대를 알리고 장르문학에 더 많은 지면을 마련하고 연대 소속 작가님들을 알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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