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게토(ghetto)는 중세 시대에 유대인거주지역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금지 시킨 곳을 의미한다. 유대인은 자의로 때로는 타의에 의해 게토를 이어갔다. 유대 땅에 대 흉년이 들자 유대인은 이집트로 피난을 간다. 마침 동족 요셉이 총리로 있었던 터라 쉽게 난민 수용이 허락된다. 그때 유대인은 고센 땅을 자신만을 위한 거주지역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고센은 유대의 게토가 되었다. 유대인이 게토를 원했던 것은 이집트에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유대의 종교는 유일신앙으로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게토가 유대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장점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다른 문화를 수용하거나 교류하지 않는 배타적 문화를 형성하여 스스로 고립되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부족국가에서는 게토가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국가 간의 교류가 잦아진 사회에서는 스스로 고립과 소멸을 불러오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게토는 유대인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특히 유대의 주류였던 바리새파는 자신들이 이어온 전통율법에서 벗어나면 정죄하여 분리시켰다. 그들은 경계의 담을 쌓아 그 안에 있는 자신들은 옳고 담을 벗어난 타인들은 옳지 않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 신앙에 빠져 내부갈등을 빚었고 국력을 약화 시켰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는 나와 너 사이에 쌓은 담, 게토를 허무는 경계 허물기에 나섰다. 예수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건강한 자와 병자 사이, 의인과 죄인 사이, 주인과 종 사이, 성인과 어린이 사이, 보수신앙과 진보신앙 사이 등등 모든 분야에서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다. 이런 노력은 결국 양쪽의 협공을 받아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예수는 그 죽음조차도 경계허물기의 희생 제물로 여겼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의 죽음으로 허물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게토가 형성되어 있지만 특히 정치영역에서 심화되어 있다. 진영이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진영 간의 담쌓기는 오히려 패망을 불러온다. 작금의 정치지도자들은 마치 바리새파들처럼 진영의 담을 더 높이 쌓아가는 일을 부추긴다. 이런 상황 속에 예수의 가르침을 가치관으로 삼고 사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길을 따라 경계 쌓기가 아니라 경계 허물기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라는 명을 따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