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낙엽경기라도 벌어진 걸까. 높하늬바람이 내려 부는 아침, 출근길이 온통 낙엽축제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정신없이 하늘을 난다. 은행잎은 갈 곳 잃은 노랑나비들의 군무를 춘다. 멀리 커다란 느티나무는 어느새 앙상한 몸이다. 사시 푸를 것만 같던 벚나무도 옷을 거의 다 벗었다.

시선이 나무 밑 잔디밭에 머문다. 샛노란 은행잎들이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정연하게 도열해있다. 말라가는 잔디이파리 사이사이에 은행잎이 들어있는 모습이 아늑하다.

순간, 은행잎들이 작은 황금색 이불로 보였다. ‘내년 봄도 새싹을 돋구려면 겨울잠을 잘 자야 해….’ 은행나무가 잔디에 조곤조곤 일러주는 말이 귀를 일깨운다. 도로 가장자리나 가로수 아래 잔디밭과 화초밭, 학교나 공원 화단은 이미 두꺼운 이불이 내려앉아 겨울 채비를 한다.

나도 나뭇잎 이불 같은 이불로 어린 시절을 살았다. 왕골자리 위에 깐 두툼한 무명 이불이다. 목화씨를 심고 가꾸어 딴 목화송이 솜을 어머니가 직접 타서, 일부는 무명 베를 짜고 나머지는 이불 솜으로 썼다. 어머니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는, 온전한 자연산 이불이다. 그 이불을 덮고 우리 동기들은 잠자고 자라났다. 집에 화학섬유가 없던 때를 산 어린 시절이, 지금은 왜 그리도 소중하게 생각될까.

어릴 적 산골 마을 사람들은 가난해도 행복했다 싶은 것은 웬일일까. 마음은 하늘, 산, 구름, 골짜기, 내, 들이 나타나고 나무, 풀, 곡식, 꽃, 잎, 열매들이 떠오른다. 가족 같던 이웃들, 소, 개, 돼지, 닭 같은 짐승들, 야생동물들과 양서류, 파충류, 곤충들도 생각난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길, 한 건물에 살면서도 남같이 사는 도시 사람들과는 너무 대비된다.

약 반세기 전, 나라는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했다. 그에 따른 시골 엑소더스 물결에 따라 나도 도회지로 떠나와 산다. 고등학교 때는 대도시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가 예비 엑소더스였으리라. 자취방에도 어머니의 목화이불은 함께했다. 머리맡에 둔 마실 물이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도, 목화이불은 너끈히 이겨냈다.

군에서 제대하고 직장 따라 공업도시로 왔다. 이불은 화학섬유 제품으로 바뀌었다. 자투리 화학 천들을 성글게 뜯어 솜 대용으로 써서 누빈 커다란 이불이다. 간편히 이불 반을 접어 요로 쓰고, 반은 덮었다. 어머니의 이불은 까마득하게 잊고 바삐 살았다. 세월 흐르는 줄도 잊은 체, 모두가 일에 매달렸다.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결혼하고 아이들 둘도 태어났다. 이불은 모두 화학제품으로 바뀌었다.

나라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정치 격변을 겪으면서도, 나라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일어섰다. 산업화 입국 반세기 여가 흐르는 동안, 지구촌도 많이 변했다. 기후변화, 환경재앙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려다가 당하는 후과(後果)일까.

컴퓨터 모니터에, 손주 또래 어린아이들이 낙엽 이불을 덮고 활짝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