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가 만났다
권영훈 휴코스 회장

기업인. 일자리를 창출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래서 나라 경제를 살리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장인정신을 갖고 또 늘 혁신해야 한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학생들의 무거운 책가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뛰어든 사물함 사업이 35년 만에 종합가구기업으로 성장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국민 건강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기업 휴코스의 권영훈 회장. 그의 인간과 기업에 대한 소신은 분명하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정직은 기본이다. 그리고 효도해야 한다. 그것이 인륜이다. 인륜이 돼 있어야 개인도 그 기업도 성장이 있다.”

 

“신문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척추측만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에는 모든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시대였고 이 짐을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운명처럼 머리를 짓눌렀다. 과감히 직장을 떨치고 나왔다.

국가나 경제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강을 위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의 사업이 됐다.”

- 휴코스는 안동에서 교구 사업으로 성장한 가구업체다. 어떻게 안동이라는 지방도시에서 전국적인 사물함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안동에서 역무원으로 일할 때 휴무일이면 아내의 깨알 같은 문방구 물품 정리를 도왔다. 그때 안동여고 서무과장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내가 하는 일을 보고는 ‘학교에 한 번 가봐라’고 했다. 교실에는 학생들의 책가방과 참고서, 도시락 등 수많은 개인 물품들이 저마다 박스에 담겨 있었다. 사물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왔다.

때마침 신문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척추측만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당시에는 모든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시대였고 이 짐을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운명처럼 머리를 짓눌렀다. 과감히 직장을 떨치고 나왔다.

- 특별한 기술이나 계획이 있었나. 당시 직장을 팽개치고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다고 기술도 계획도, 판로도 없었다. 단지 사물함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사업에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학교 사물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국을 발로 뛰면서 판로를 개척했다. 처음엔 학교에서 사물함 주문을 받아 외주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브로커도 있었다. 주문했다 계약금을 떼이고는 사업자등록증을 확인하는 버릇도 배웠다. 그러다가 대구의 한 공장이 부도가 나서 전화요금을 내지 못한 것을 대납해주고는 내가 인수했다. 안동에서 계속 사업하기에는 한계를 느끼고 대구로 진출했다.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이었다.

국가나 경제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강을 위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나 자신의 사업이 됐다.

- 사물함에서 시작해서 지금 휴코스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보니 종합가구점 같다. 얼마나 많은 제품을 제작하고 있나. 또 경쟁업체는 중소기업인가 대기업인가.

△사물함과 의자 책상 교탁 청소 비품함 급식테이블 등 학교 교구에서부터 사무용 가구 및 일반 가구 등 50여 품목에 개별 아이템은 1300여 개가 된다. 지금은 자체 연구소에서 침대 메트리스도 개발중이다. 사물함 제작은 전국 1인자임을 자부한다. 35년 된 종합 가구업체로 이제는 대기업들이 모두 경쟁자다.

- 사물함을 학교에 단체 제작하면서 사업이 확장된 것 같다.

△처음에는 학생들 자부담으로 사물함을 제작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어려운 학생은 내가 부담하기도 했다. 정부 예산으로 제작하기 위해 학생들의 휘어진 척추 X레이 사진을 노동부와 교육부에 보내면서 진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2년이 지난 뒤에야 조금씩 예산이 책정되기 시작했다. IMF 전에 대구시교육청의 예산으로 사물함을 제작하면서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덕분에 성서공단으로 이전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 회사명이 바뀌고 사훈도 바뀌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회사 초창기에는 ‘마음’이 중요했다. 마음이 바로 서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영일교구일 때는 ‘정직한 마음, 성실한 마음, 창의적인 마음’을 사훈으로 했다. 회사의 틀이 잡히고 나니 창조하고 혁신하고 열정이 있어야 했다. 2014년 달성 테크노파크로 이전하면서 회사명을 ‘휴코스’로 바꾸고 사훈도 바꾼 것이다.

사명 휴코스는 Human Comportable System furniture의 머릿글자다. ‘생각을 만드는 가구’가 거기서 나왔다. 생각하지 않으면 개인도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 회사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성의 새 제품을 구상하고 상품화 하고 있다.

- 평소 사원들에게 사훈 외에도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대답보다 먼저 ‘권효가(勸孝歌)’가 새겨진 탁자 위 유리판을 가리킨다.) 정직과 효도다. 정직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강조해 왔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정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릇된다. 효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말하는 거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며 그 출발은 효에 있다. 효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것이 개인 생각이다.

- 사회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학생들의 책걸상이나 가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 사용자들의 주문에서 어떤 변화를 알 수 있나.

△편안함과 기능성을 요구하면서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다. 학생들은 체격이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무르다.’ 의자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해서 체격에 맞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잠자는 학생들을 위해 서서 수업 받을 수 있도록 높이 조절용 책걸상을 보급하고 있다.

- 최근 휴코스의 기능성 식탁이 조달청에서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는 자랑을 들었다. 부설 연구소의 개발 작품인가. 휴코스의 연구 개발 실적은?

△그렇다. 연구 개발이 기업 발전의 핵심이라는 생각으로 연구소에 우수한 인재를 영입해서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다. 식탁과 일체형 의자는 전국 14개 회사 제품이 출품해서 휴코스 제품만이 우수제품으로 선정됐다. 청소할 때 식탁 위에 의자를 올려놓지 않고도 의자가 들리는 일체형 식탁으로 식탁과 의자를 별도로 사용하는 것보다 공간 활용과 기능성에서 우수하다. 대장균 등 항균 기능을 가진 상판을 사용하여 위생까지 모두 챙기는 효율성을 갖췄다.

이 제품은 한국발명품진흥원으로부터 우수 발명품으로 인증 받았다. 우리 회사는 스툴의자 일체형 테이블 구조체로 조달청 우수제품에 선정되고 우수발명품으로 지정되었다. 가구에서 연결구를 이용한 조립식 가구와 친환경 항균 시트 등 6개의 특허와 각종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춰 혁신적 제품을 개발해 내야 기업이 발전해 나갈 수 있다.

- 가구에서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옛날에는 원목가구를 썼으나 지금은 가공합판을 이용한다. 가공합판의 본드 냄새는 조달청의 인증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인간을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주기 위한 가구라면 무엇보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비싸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자재를 사용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친환경 인증에 필요한 공정을 지켜 친환경 인증 확인 후에 납품한다.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어떤 정당의 대선 후보가 주 4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 노동 현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

△주 4일 근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는데 현장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 같다.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사업을 하는 기업인으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근로 현장에서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도 얼마나 힘 드는지 말 못할 지경이다. 근로자들조차 잔업이 많은 다른 회사로 가려 한다. 그들에게 생산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현실과 맞지 않은 듯하다.

- 사업장에서 상급자의 갑질이 자주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도 사용자의 갑질이 언론에 등장했다. 권 회장의 개인적 생각은 어떤가.

△세상이 변했다. 시세에 따라야 하고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일을 시키려면 그만큼 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사업장에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특히 사용자는 업무상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 나이에 비해 올드해 보인다. 평소 외부활동에서도 근엄하게 대하는 편인가.

△호적보다 실제 나이는 더 많다. 교구 사업의 특성상 교장이나 서무과장을 상대하면서 감색이나 검정색 양복을 입었고 넥타이도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저절로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역무원으로 9년 간 근무하면서 제복이 체질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업 현장에서 직원들을 엄하게 대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나 작업 효율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올드하게 보일지 몰라도 생각은 늘 혁신을 강조한다.

- 기업인으로서 사회 기여나 기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

△실제 필요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맨 투 맨(man to man)’ 식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달성군 노인복지관에 사물함을 기증하기도 했다. 나 자신 봉사단체의 전국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과 합의한 위안부 문제를 현 정부에서 뒤집었다. 그 뒤에 보니 여성단체가 있었고 그 순수성을 의심받았던 것도 그런 이유 중 한 사례라고 본다.

- 기업인에게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나.

△공직자는 때가 되면 승진해야 하듯 기업인도 사업을 벌였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아야 한다. 개인적인 성공보다도 기업인은 정말 애국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고 있으니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기업인에게도 권리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제발 그들이 일 할 수 있도록 자꾸 건드리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권영훈(73)

안동 풍산에서 빈농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산 넘고 강 건너 30리 길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누나가 사는 부산으로 가서 영도고를 다녔다.

졸업 후 국제화학에서 쇳덩이 가마를 분해 조립하는 불덩이 속에서 4년 근무하다 철도청 안동역에서 고용직으로 입사해 정식 역무원이 됐다.

9년 만에 안동역에서 나와 학교 사물함 제작에 뛰어든다. 1986년 교구를 제작하는 영일교구사를 설립했고 주식회사 영일교구에서 휴코스로 사명을 바꿨다. 가구 제작 경력 35년째인 모범 장애인 기업이다. 일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쳤고 사업은 성공했으나 청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청각장애를 얻었다.

호적은 실제보다 3년 늦다. 겉은 투박하고 올드해 보이지만 제품 개발과 기업 경영에는 혁신을 강조하는 경상도 사나이. 뚝심 하나로 기업을 일으켜 세웠듯 일에서만큼은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정신의 소유자이다.

/이경우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