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도시의 아픔
<상> 일본제철이 떠나는 카시마市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 전경.  /카시마제철소 홈페이지 다운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 전경. /카시마제철소 홈페이지 다운

일본제철은 한때 세계 철강업계의 벤처마킹 단골 메뉴였다. 세계적 기술력으로 품질 좋은 철강 생산을 했고, 지역사회와의 협업 등 배울 점이 많아서였다. 포스코 또한 초기엔 일본제철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으며 성장판을 마련했다.

그런 일본제철이 최근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3위 철강 기업 일본제철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철강도시 포항으로서는 일본제철 사례가 궁금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지 매체에 보도된 내용 등을 통해 그 배경을 살펴봤다.

1950년 창업한 일본제철은 매출 6조2천억 엔(62조 원), 종업원 수 10만6천 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이다. 1970년 일본 아와타 제철과 후지 제철이 합병해 신일본제철로 이름을 바꾼 이후, 2012년 스미모토 금속 공업과 합병해 ‘일본제철’로 탄생했다. 이후 일본 전국에 15기의 용광로를 운영하며 세계 최대 조강생산량과 판매량을 기록한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 경제를 견인해 왔고, 세계 철강 업계를 주름 잡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제철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지난 3월,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의 고로 2기중 1기를 2024년 말까지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것.

 

中 철강업체 공격적 증산에 코로나發 수요 감소
탈산소정책도 ‘코크스’ 이용하는 고로사에 부담
2024년까지 고로 추가 폐쇄 등 ‘고육지책’으로

도시인구 15%가 생계 의지… 고용·납세 등 타격
하청업체 도산·인구 감소 등 ‘쇠락의 길’ 불 보듯
그린수소 생산 등 재도약 시책 ‘공염불’ 우려 커

□ 글로벌 경쟁 심화·탈탄소 압박 등이 요인

일본제철의 고로 가동 중단은 당장 일본 산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제철은 국내 수요의 감소, 수출 채산성 악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철강사 경쟁과열 등을 구조조정의 이유로 밝혔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요 감소도 한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

OECD에 따르면 2019년 일본의 조강 생산 능력은 1억3천만t이지만 실제 생산량은 9천900만t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8천319만t까지 감소했다. 중국 철강 업체들의 공격적인 증산으로 인한 공급 과잉, 채산성 악화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던 일본제철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요가 더 축소되자 결국 카시마 제철소 고로 추가 폐쇄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일본제철의 구조조정 발표가 나오자 일본 내에서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졌으며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닛케이신문은 일본 정부의 탈탄소 정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내건 상태.

석탄을 원료로 하는 코크스를 이용하는 고로사의 부담은 자연스레 커질 수밖에 없다. 코크스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로를 이용해도 되지만, 고로에 비해 전기로는 불순물 제거가 어려워 자동차에 사용되는 고장력 강판이나 전기자동차의 모터에 활용되는 전기강판 등 고성능 강재 생산에는 한계가 있다. 고로를 이용한 자동차용 강재 생산이 주력인 일본제철에게 탈탄소 정책은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 관련 학계 및 산업계의 는 분석이다.
 

□ 고로 불 꺼지면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 고로 1기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측은 제철소 소재 지방정부다. 이바라키현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6만여명의 작은 도시 카시마시는 철강과 함께 성장한 지역이다.

스미모토 금속공업의 주력 제철소였던 동일본제철소 카시마 지구는 2012년 스미모토공업과 신일본제철이 합병하면서 일본제철 소유로 넘어갔고, 1968년 가동을 시작한 이후 자동차와 가전제품용 박판 등 일본 주력 수출품의 소재를 생산하면서 지역 경제를 든든히 받쳐왔다.

카시마시와 일본제철과의 연관은 각종 지표로도 확인된다. 인구 6만7천여 명 중 일본제철의 종업원만 3천 명, 하청회사를 포함하면 거의 1만여 명이 일본제철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도시 인구의 약 15%가 일본제철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일본제철은 고로 폐쇄에 따라 일자리를 잃게 생긴 인력을 타지에 위치한 제철소로 전환 배치하여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카시마시에 이미 기반을 마련한 일부 직원들은 강재가공회사 등이 위치한 인근 치바현 등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현지 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

카시마시와 이바라키현 등 지방 정부는 제철소 일부가 폐쇄되면 고용과 납세 등에 타격을 받기 때문에 비상이 걸려 있다.

카시마시 니시키오리 고이치 시장은 그동안 “고로 1기가 폐쇄되면 협력업체 뿐 아니라 음식업 등 여러 형태 사업장의 어려움으로 5천명 정도가 고용에 나쁜 영향이 받을 걸 각오해야 한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결국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위기 상황임을 토로했다.

카시마시는 앞서 철강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은 이와테현 가마이시시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일본 근대 제철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가마이시는 1978년부터 1989년 사이 석유파동과 엔고(円高) 현상으로 현재 일본제철의 전신인 신일본제철이 고로 2기를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지역의 근간을 이루던 산업이 쇠락의 길을 걸었고, 조선소와 하청업체도 도산하거나 공장을 이전하면서 도시 자체가 무너졌다. 1975년 기준 가마이시 제철소 종업원 수는 가마이시 지역 종사자 전체의 약 15%, 제조업 종사자 수의 약 61%였으며 1963년 철강 산업이 번성할 당시에 인구는 9만2천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기준 인구는 3만2천명까지 내려앉았다.

이런 선례가 있다 보니 그간 경제 특구에 의한 공업용수와 수도요금 인하, 녹지율 완화 등의 지원을 해 온 이바라키현과 카시마시는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고로 2기 조업 유지와 관련해 필요한 100억 엔 규모의 지원을 일본제철에 제안한데 이어 탈탄소 정책 기조에 맞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도 50억 엔 상당의 지원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제철의 계획을 막지 못해 현재 비상이 걸려 있다.
 

카시마 제철소 본사.
카시마 제철소 본사.

□ 다양한 대책 발표했지만, 기업도시로 재생은 어려울 전망

그동안 일본제철과 20여 회 접촉하며 현재 체제 존속을 위해 나섰으나 협상에 실패한 이바라키현은 고로 폐쇄 발표 이후 대안으로 수소환원제철법 개발, 제로카본스틸 생산, 그린 수소 생산 등 수소를 테마로 한 탄소 중립 산업 거점으로 성장시키겠다며 재도약 시책을 내놓고 있다.

카시마시 역시 공업 용수 가격 인하, 지역 교통 접근성 개선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 상태에서 더 이상 기업도시로의 재생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철강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면서 일본제철의 경영 상황도 반전되었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일본제철의 입장은 확고하다.

실제 일본제철은 지난 2분기 경영실적 발표 연도 전체(21.4~22.3·일본 회계연도 기준) 영업이익 6조 원을 전망했으며 연결기준 조강생산량은 4천6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9년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하고 수익성도 나아졌으나 일본제철은 계획대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적 발표장에서 향후 고정비를 절감하고 고부가가치재 위주 생산체계를 수립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밝힌 일본제철은 대대적인 설비 구조조정도 실시, 계획대로 기존 15기 고로를 순차적으로 폐쇄해 10기로 축소하고 조강생산능력을 20% 줄일 예정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이후 고로가 가동 중인 다른 지역은 일본제철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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