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하양 무학로교회
노무현 대통령 묘역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
조원경 목사와의 인연으로 무료 설계 맡아
벽돌 등 잇단 기부에 사찰서도 통 큰 보시
아들 승지후 건축가는 교회 건너편 명소
갤러리 카페 ‘공간 물볕’ 설계·감리 맡아
위로를 선물하는 명품 문화공간으로 탄생

경산시 하양읍 도리리 무학로에 있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하양 무학로 교회의 모습. 옛 교회 건물을 보존한 채 새로운 교회당 건물과 야외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경산시 하양읍 도리리 무학로에 있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하양 무학로 교회의 모습. 옛 교회 건물을 보존한 채 새로운 교회당 건물과 야외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만약 신(神)이나 절대자가 실재한다면 어떤 곳에 머무르기를 원할까?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나 성당, 절이나 모스크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을지, 아니면 작고 소박하더라도 자신을 섬기는 진실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환하게 웃을지.

한국은 대도시이건 조그만 도시건 교회 건물이 높고 큰 것이 보편적이다. 첨탑에 세운 십자가를 눈에 띄게 네온사인으로 장식하는 경우도 흔하다. 성당과 절 역시 대형화하는 게 일종의 흐름이나 추세인 걸 부정하기 어렵다.

농담처럼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유럽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밤늦게 산에 올랐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수십 개의 네온사인 십자가. 어디서건 쉽게 보이는 빨간 십자가에 놀란 한 여행자가 말했다고 한다. “어… 한국의 야경은 유럽의 공동묘지 같네.”

그는 아마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묘지에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를 떠올린 것이리라.

‘웅장하고 눈에 확 띄게’ 지어져 눈길을 사로잡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교회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20여 평 작은 규모의 소박한 벽돌 건물. 경산시 하양읍에 자리한 무학로교회다.

 

승효상 건축가의 설계로 새로 지은 하양 무학로 교회 내부의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승효상 건축가의 설계로 새로 지은 하양 무학로 교회 내부의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인위적 화려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독특한 예배당

하양읍은 인구가 3만 명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소읍(小邑).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이곳으로 최근 1~2년 사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바로 무학로교회를 보기 위해서다.

지난 26일 찾아가서 직접 확인한 교회는 듣던 그대로 조그맣고 아담한 예배당이었다. 어깨를 붙이고 앉는다고 해도 50~60여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 사실 신축 예배당이 생기기 이전 무학로교회의 신자는 30여 명 남짓이었다고 한다.

갈색의 벽돌로 묵묵히 쌓아올린,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건물. 예배당 내부에도 설교를 하는 사람과 설교를 듣는 사람의 눈높이를 달리하게 만든 강단조차 없었다. 첨단의 조명 시설과 음향기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축 교회는 2층으로 만들어졌다. 옥상인 2층에 올랐다. 거기서도 일체의 인위적인 장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조그만 벽돌 벤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작은 정원에도 야외 예배당이 꾸며져 있었는데, 그곳도 벽돌 벤치에 벽돌 설교대만 있는 심플한 모습. 동네 사람들이 와서 언제든 쉬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전 교회와 새로 만든 교회 뒤쪽으로는 낡은 살림채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현란하게 꾸며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담백함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교회의 부속 시설로 사용 중인 교회 마당에 있는 옛 건물의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교회의 부속 시설로 사용 중인 교회 마당에 있는 옛 건물의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눈빛이 선량한 조원경 목사를 교회 마당에서 만났다.

“2019년 초반에 무학로교회를 신축했어요. 2년 6개월쯤 시간이 흘렀는데 그간 7천500명 넘는 사람들이 여길 찾아왔습니다. 지금 화장실을 수리하고,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고 있는데 그 비용도 모두 교회를 찾아준 분들의 헌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일체의 장식과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공간’이라는 교회가 가진 본질에만 충실하고자 애쓴 건축가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럼 신축 무학로교회는 누가 설계하고 어떤 사람들이 만든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생긴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승효상 건축가의 아들인 승지후 건축가의 작품 공간 물볕. 카페와 책방,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옛 무학로 교회 건물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승효상 건축가의 아들인 승지후 건축가의 작품 공간 물볕. 카페와 책방,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옛 무학로 교회 건물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목사와 건축가, 스님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공간

몇 년 전. 조원경 목사는 지역 문화 관련 세미나 모임에서 건축가 한 명을 만난다. 교인들이 30년을 사용한 오래되고 낡은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게 안타까웠던 조 목사는 건축가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7천만 원이 있습니다. 이걸로 새 교회를 지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이 건축가 승효상(69·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다.

건물의 설계와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순박한 시골 교회 목사의 작은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여 무료로 무학로교회를 설계한 승효상은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집 ‘수졸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한 명.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가서 사는 삶이 아닌 이상 더불어 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떻게 서로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나누면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던 승효상은 저서 ‘빈자의 미학’으로도 유명하다.

빈자의 미학을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정의한 승효상이 그가 설계하는 건축물에 어떤 철학을 담아온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함께 나누는 공간이 굳이 크고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무학로교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었다.

신축된 무학로교회엔 조 목사와 건축가 승효상의 노력과 땀만 들어간 게 아니다.

‘작은 시골에 평화로운 마음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는 뜻에 동의한 대구의 한 벽돌공장 대표는 10만 장의 벽돌을 선뜻 기부했고, 인근 영천시에 위치한 사찰 은해사도 기꺼이 교회 신축에 300만 원을 보탰다. 하양읍 주민들도 크고 작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무학로교회엔 은해사 주지가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그 아래엔 ‘아름다운 우리의 인연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한다’는 내용의 표지석이 새겨져 있다. 그걸 보면서 섬기는 신은 달라도 결국 종교의 핵심은 사랑과 자비, 이해와 용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와 건축가의 순수한 우정과 종교 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화합, 여기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신앙심을 보여준 사람들. 무학로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진 듯했다.

 

무학로 교회 앞 공간 물볕의 갤러리 내부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무학로 교회 앞 공간 물볕의 갤러리 내부 모습.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공간 물볕’도 하양읍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라

비단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번잡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공간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무학로교회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세상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혼자 조용히 찾아와 한참을 예배당에 앉아 있다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귀띔. 여기에 더해 승효상의 스타일과 건축 철학을 직접 느껴보고자 하는 학생 여행자들도 방문한다고 했다.

얼마 전엔 무학로교회 맞은편에 카페와 갤러리, 야외 전시장 등으로 구성된 ‘공간 물볕’이 또 하나의 ‘하양읍 명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카페, 여기에 작고 예쁜 전시 공간까지.

‘물볕’은 무학로교회가 있는 하양(河陽)의 순우리말이다. 여기를 설계한 건 승효상의 아들인 승지후. 그도 아버지처럼 건축가로 일하고 있다. 건물의 이름인 ‘공간 물볕’을 제안한 것은 아버지 승효상, 그 이름에 어울리는 건물을 구체화시킨 건 아들 승지후다.

지척에 있는 무학로교회와의 조화를 위해 설계 과정에서 여러 고민을 했다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공간 물볕’.

그곳 정원과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과 사진을 천천히 둘러보고, 카페에 마주 앉아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가 다정해 보였다.

기실 성(聖)과 속(俗)은 완벽한 반대의 개념이 아니다. 성스러움 속에는 속됨이 숨겨져 있고, 속된 것들 안에서 성스러움을 찾아내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무학로교회와 ‘공간 물볕’이 불화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며 옹기종기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신이나 절대자가 기꺼이 머물며 사람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는 공간은 반드시 크고 권위적이어야 할까? 작고 소박한 곳에선 이타적이고 선한 행위가 이뤄지기 힘든 것일까?”

이 물음에 관해 경산시 하양읍 무학로교회가 들려주는 답이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찾아가도 좋을 것 같다. 환한 가을볕과 규모는 작지만 큰 위로를 선물할 예배당이 당신을 반길 게 분명하다.

돌아오는 길. 고무신을 신은 조 목사가 잔잔한 웃음으로 기자를 배웅했다. 교인들과 함께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이 빛나는 교회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이 하얀 고무신에 투영되고 있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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