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섭

비가 내린다 늘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

나무에선 열매 대신 눈물 구슬만한 빗방울이 맺힌다

(….)

따사로운 햇살의 추억을 간직했던 이주민은 곧바로 치매에 걸리고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 영안실에 안치되고선 구름 속에 묻힌다

(….)

갈 길이 막막해질 때면

탑처럼 쌓인 적운(積雲)을 향해 기도를 올리거나

굴뚝으로 인공 구름을 만들어 공양을 올린다

그러나 새들은 언제나 낮게 날고

저 출구의 소실점을 향해 치달리는 영혼은 너무나 축축하다

아무도 터널을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발밑에서 경적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은 환청일거라고 비웃었지만

다들 구름에 갇힌 나무처럼 하얗게 질린 지 오래다

‘터널’은 굴뚝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힘을 숭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내면을 상징한다. 이 시는 불모의 문명 속에서 내면마저 물신화되어 축축하게 부패해가는 우리의 삶을 고발한다. 이 ‘고발’엔 어떤 긍정적인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이 축축하게 젖어들며 죽어가는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현대가 가공할만한 죽음을 빚어내는 세계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주력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