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류형우 전 대구예총 회장

세상을 마감할 때 가족들로부터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삶은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 류형우 전 대구예총 회장.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서는 게 일상이 된 사람에게 물음을 하나 던져본다. 그에게는 여행이 먼저일까 사진이 먼저일까.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기가 고스란히 시와 사진집으로 환원되는 사진작가 류형우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그를 만났다. 그는 길에서 찾은 길 위의 행복을 위해 세속적인 관계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의사였던 사람이 진료실을 나왔고, 예총 회장직도 단임으로 내려놓았고, 열의가 많아서 40여 개의 단체에 개입되어 있던 사회활동을 하나씩 접었다.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었다던가. ‘지진지퇴(知进知退)’라고, 일만 하다 죽고 싶지 않더라고 했다.

 

“류 작가는 삶이 비누거품 같다고 한다. 허상을 좇으며 열심히 달리다 녹슨 기차처럼 어느 순간에 멈추고 마는 것이 인생이니, 남은 시간이라도 가치 중심으로 자신의 주관적 의지대로 살며, 등에 진 짐을 조금 내려놓고 슬로우 라이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다. 사진기를 메고 온 산야를 헤매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어느 날 허리를 다쳤다. 허리의 통증으로 걷지 못하는 동안 별 상심이 다 들었는데, 정상적으로 걸을 수만 있으면 정말 좋은 마음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간절한 바람 탓일까. 아주 천천히 건강이 회복되었다. 아기걸음마를 떼듯이 조금씩 움직였다. 류 작가가 건강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의사가 아직 무리라고 하는데도 그냥 길을 나섰다. 오로지 걷기 위한 여행이었다. 성 야고보가 걸었던 길을 따라 하루에 20~30㎞씩 걸었다. 프랑스 북부의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총 800㎞를 걷는 길이었다.

첫날 걸으며 배낭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긴 행군에 필요한 간식을 시작으로, 일상의 필수 도구라는 생각으로 꽉꽉 채워 넣었던 짐들이 육신을 너무 힘들게 했다. 배낭에서 짐을 좀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심을 버려야 무념무상도 이루어지고, 비워야 또 채워지는 것이니.

걷는 동안 한껏 단순해진 머리로 살아온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후 자신감이 붙어서 희말라야 ABC를 포함한 여러 산들도 다녀오고, 드디어 높이 5,895m의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등정에 도전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고, 지구온난화로 정상의 빙하가 녹고 있는 산이었다. 등산객 한 사람당 가이드와 포터, 셰프를 포함한 세 명이 공식적으로 배정되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 나라만의 일자리 창출 수단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대부분인데 그들은 바비 맥퍼린의 ‘Don‘t Worry, Be Happy’나 ‘하쿠나마타타’ 같은 노래를 부르며 등산객들에게 용기와 즐거움을 주더라고 했다. 그들이 의외로 참 많은 걸 갖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산증이 심각했을 텐데 그나마 괴로움을 조금 덜어주었겠어요.”

“걱정 마, 문제없어, 힘든 산행으로 어렵게 살면서도 다 잘 될 거라는 노랫말처럼 청년들이 늘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그들 덕분에 고산증을 이겨내고 정상에 갈 수 있었어요.”

류 작가는 가난하지만 운명에 순응하는 심성과 자연만으로 풍요로운 나라 아프리카를 그렇게 만났다. 여행은 이렇듯 각 나라의 문화와 풍속, 삶의 일부분을 알게 해준다. 그 힘든 여정 속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건 그들의 의식이 그 만큼 건강하고 긍정적이란 말일 것이다. 류 작가는 거기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삶의 풍요로움은 재물이나 권력 같은 물질적인 풍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의식의 지향성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집어넣어서 배낭이 무거웠던 것처럼 그의 삶 역시 너무 많이 지니고 산다는 반성도 했다.

“의사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병원을 그만둔 이유가 뭘까요?”

“일만 하다 죽고 싶지 않았어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은 지금 그는 다만 전직 의사일 뿐이고 전 예총 회장일 뿐이다. 평소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역할이나 참여에 대한 고민을 늘 해왔기 때문에 사회단체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참여도 하며 많은 단체에 몸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적을 둔 병원이 지역민의 도움으로 성장한 터여서, 나누는 마음으로 지역민을 위한 문화공간 ‘예지앙’을 열었고 그곳을 모태로 ‘수성문화원’을 만들기도 했다. 사회에 돌려드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단체에 기여하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어느 날 부친이 ‘나아갈 줄 알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며 ‘지진지퇴(知进知退)’라는 액자를 만들어주셨는데 그것이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아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류 작가가 예총 직무를 시작하기 전에 병원 일을 정리한 것도 그런 마음이었다. 병원 일을 해가며 예총 회장직에 앉아 있는 건 예술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총 일을 하는 동안에는 오로지 예총만 생각하기로 했다.

“일을 열심히 하셨는데, 예총 회장직을 단임으로 끝내셨네요.”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내리고 싶어도 못 내려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자리에 대한 탐욕은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는 자각이 단임으로 일을 놓게 만들었다. 자신의 한계는 본인이 더 잘 안다며 그가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매우 건강하셔서 백수 할 줄 알았던 부친이 일흔세 살에 돌아가셨다. 잦은 화재와 사업 실패로 고생만 하셨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가실 줄 몰랐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바쁜 사회생활을 핑계로 소홀했던 아쉬움이 노환으로 편찮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형식적인 모자관계가 아닌 진정한 가족과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가족 사랑이고 행복이어서, 이후 모자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법까지 달라졌다. 사회적 역할에 함몰되고 보여주기 위한 삶에 치중하는 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삶의 가치를 그렇게 되찾았다.

“지난해에 첫 개인전을 가지셨는데 어떤 작품들인가요?”

“삶의 가치와 생명의 기쁨을 주제로 한 5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어요. ‘길 위에서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트레킹에서 찍은 사진을 담은 전시회였어요.”

주중에는 안동 하회의 시골집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아내와 함께 산에도 다니고 사진도 찍으며. 항상성을 유지하되 하루하루를 주도적으로, 쫒기는 삶이 아닌 진정한 자기만의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한다고.

“혹시 어떤 새로운 계획을 갖고 계세요?”

“지금 이대로가 좋지만 혹 시간이 허락하면 하회마을의 사계를 사진집에 담아보고 싶어요. 코로나가 풀리면 세계 곳곳의 오지 트레킹도 가고.”

류 작가는 삶이 비누거품 같다고 한다. 허상을 좇으며 열심히 달리다 녹슨 기차처럼 어느 순간에 멈추고 마는 것이 인생이니, 남은 시간이라도 가치 중심으로 자신의 주관적 의지대로 살며, 등에 진 짐을 조금 내려놓고 슬로우 라이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성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돈이나 부귀영화, 권력 같은 부유함보다 세상을 마감할 때 가족들로부터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제 속의 문장을 뽑아 쓰듯이 사진작가 역시 끝이 없는 길을 걸으며 자연과 사물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카메라에 담는다. 예술의 완성도를 위해서 일상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천천히 자신의 템포대로 걸으며 슬로우 라이프를 실행하는 것이다. 내려놓아야 살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자체가 나름 의미 있는 삶의 이력이지만 혹 과유불급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다고.

류 작가는 대구수성문화원 초대원장과 파티마여성병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10대 대구예총 회장을 역임하며 대구문화예술 발전과 지역의 문화예술 행사를 주도했고 대구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예총 예술문화상을 수상했다. 왕성한 사회 참여와 역할로 대통령상과 보사부장관상, 통일부장관상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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