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권 5개 시도지사로 구성된 영남권 미래발전협의회는 이건희 미술관 입지 선정을 지방으로 한정해 공모절차를 추진해 줄 것을 공동 건의했다. 독자적으로 이건희 미술관 지역 유치에 나섰던 자치단체가 지방 한정에 뜻을 같이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다. 우리지역에 이건희 미술관이 온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미술관이 와야 한다는 지방도시 공동의 절박함을 담아낸 결정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가 30여 군데나 된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지방도시 하나쯤은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란 빌바오 효과에 희망을 걸고 많은 지방 도시들이 미술관 유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방도시의 이런 절박함보다는 과잉 유치전을 핑계로 이건희 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에 명분을 찾는 모양새다. 지방 도시들이 왜 수도권을 제외하자고 건의를 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은 없이 너무 많은 도시가 유치를 희망하니 수도권에 건립하겠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있는 것이다.

수도권 중심의 국토불균형의 문제가 국가적 이슈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153개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켰다. 정부는 2단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는 등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국가적 어젠다로 삼고 있다. 지금 지방에서는 매년 10만명의 청년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도시마다 공동화로 골머리를 앓는다.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39%인 89개 자치단체가 소멸위기에 봉착했다. 이 도시들은 인구가 증가하지 않으면 멀지 않은 장래에 도시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산다. 수도권 초집중은 이미 많은 폐해를 낳으며 도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주거공간이 부족하고 교통체증 등의 문제로 고통받는 시민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정치, 경제, 문화 등 국가적 인프라는 여전히 수도권으로 집중된다.

이건희 미술관을 지방에 세울 수 있도록 공정한 절차를 진행해 달라는 영남권 시도지사의 건의는 단순히 문화적 불균형 해소 문제만 아니라 국토균형발전을 염원하는 간절함도 담겼다. 이건희 미술관 지방설립에 정부의 과감한 결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