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우리는 지난주 헌정사상 최초로 원내 경험이 전혀 없는 30대 젊은 청년이 정통보수를 표방해온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기존의 정치 틀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의미 외에도 주민들이 얼마나 정치 변화를 갈망했고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한 흥미 만점의 이 정치드라마는 이제 대변혁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기업체질 강화에 필수적인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이 회장이 남긴 말들은 빗나가거나 틀린 말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그 혜안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독일에서 신경영을 선포하며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야 한다’고 했고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는 그 유명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삼류, 기업은 이류’라며 우리 사회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했던 이 말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 당시 슈퍼 파워를 가진 정치인들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한데도 그의 용기 있는 소신 발언에 국민들은 찬사와 공감의 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3월 미국 남부지방에 기록적인 맹추위가 찾아왔다. 30년 만에 들이닥친 혹독한 한파로 남부지역에서 가장 큰 텍사스주는 비상사태까지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주정부 관료들은 정전과 배관 동파로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식수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고 주 전력업체가 한 일이라고는 전력수습의 불안을 틈타 수천 만 원의 전기료 폭탄을 부과한 것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제일 먼저 가족과 함께 따뜻한 휴양지 캉쿤으로 도피하여 텍사스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게 하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정치와 정치인이 다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낭만과 감동이 있는 정치가 있고 신뢰와 존경받는 정치인들이 없지는 않아 그들 때문에 아픔이 있어도 여전히 웃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듯하다. 지난 2019년 4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헤이그에 있는 보건 복지 스포츠부 청사 게이트를 지나던 중 실수로 그만 커피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청소부에게 대 걸레를 넘겨받아 자신이 쏟은 커피를 닦기 시작했고 대걸레로 제대로 닦을 수 없는 곳은 손걸레로 훔치기도 했고 이 장면을 지켜본 건물 내 여러 청소부들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고 한다. 페이스 북 계정과 유튜브 등을 통해 이 영상을 본 수많은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겸손하고 친절한 리더십의 본보기라는 극찬을 했다고 전한다. 독일을 18년간 헌신, 능력, 성실로 통치한 메르겔 총리에게는 별장, 정원, 자동차, 요트, 제트기는 물론 명품 메이크 옷 한 벌 없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가사 도우미도 없이 집을 청소하고 무료전기가 있는 밤늦게 빨래도 직접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낯선 정경이 유럽의 최대 경제대국 독일을 18년간이나 통치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골퍼들이 ‘힘을 빼라’, ‘고개를 들지 말라’ 는 기본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것은 익히 다 아는 일이다. 정치도 역시 정답은 다 알지만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간디는 정치의 본질은 가난한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고 만델라는 배려하고 용서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 것이 정치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 공자는 정치란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치는 상대가 있고 그러기에 항상 갈등과 반목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다양성의 존중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면 정치판이 되고 그러다가 개판, 굿판, 노름판과 동격이 된다고 한 어느 정치인의 탄식이 가슴을 친다. 어쩌다가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집단이 정치판이고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었는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실수로 커피를 쏟고 스스로 걸레질하는 총리의 모습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가사도우미 없이 돈을 아끼려고 심야전기로 직접 빨래를 하는 우리에겐 볼 수 없는 그런 지도자를 가진 나라와 국민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본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첨단산업은 이미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우리는 BTS, 봉준호, 윤여정을 보유한 경이로운 나라가 되어 있다. 오직 한 부문만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세계가 놀랄만한 혁명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이제 정치 한 분야만 남았다. 폭염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고 코로나 19 때문에 너무도 힘든 이 시국에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는 정치, 감동이 있는 정치, 멋과 낭만이 있고 정치인들의 이름을 부르면 위선, 오만, 군림이 아닌 겸손, 정직, 희생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그런 바램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