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포항 화인의원 이재원 원장

포항 지역의 문화·역사 유적을 답사하고 있는 이재원 원장.

등굣길에 만나게 되는 바다에 마음에 뺏긴 소년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은 그는 포항의 레코드 가게에선 구할 수 없는 음반을 사려고 대구와 부산, 멀리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도 했다.

연극과 음악을 좋아하던 소년 이재원은 의대를 마치고 쉰두 살 중년 의사가 됐다. 포항에서 개원한 게 벌써 17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문화를 포함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은 소년시절과 다를 바 없이 뜨겁다.

의사가 된 후에도 병원 로비에서 음악회를 열고, 포항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포항지역학연구회를 결성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좌를 개설하고,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사진집을 펴내며, 한국전쟁 시기에 포항이 겪었던 일을 책으로 묶어냈다.

의사는 바쁜 직업이다. 일을 하며 겪는 스트레스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화인의원 이재원 원장은 시간을 쪼개 지역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포항의 역사와 문화 또한 오랜 시간 진지하게 공부해왔다.

이러한 에너지와 정열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지난주 목요일 화인의원에서 이 원장을 만나 의사로서의 삶과 포항에 대한 애정이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지를 물었다. 아래는 그날 오간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개원 17년동안 로비 음악회 개최 등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열망과
지역 역사와 인문학 연구의 열정이
포항지역학연구회로 열매 맺어
3년간 한국전쟁 등 총서 7권 발간
포항의 정체성 찾기 가교역할 한몫
“문화만이 아닌 교육·의료 환경까지
중앙·지방 간극 극복에 힘 보태고파”

-고향과 학창 시절을 보낸 지역은.

△포항에서 태어났다. 포항중학교와 포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는 서울에서 의대를 다녔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공중보건의로 포항의료원에서 근무했다. 그러니 군대생활도 고향에서 한 셈이다. 병원은 2004년에 열었다.

-의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부모님의 바람이었다. 삼수를 했다. 첫 번째 대학 입시에선 의대를 지망하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했다. 1980년대 지방 고등학생들의 지향이 반영된 듯하다.(웃음)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눈이 나빠 떨어졌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당시는 안경 쓴 육사생도가 지극히 드물던 시대다. 수학을 좋아해서 고교 시절엔 자연계를 선택했는데, 돌아보면 내 기질엔 인문계가 맞았던 것 같다. 의대를 다니면서는 의학을 공부하겠다는 선택도 나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의대 시절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문화예술 공연을 쫓아다녔다. 진도에서 온 소리꾼과 춤꾼이 좋으면 진도까지 따라갔다. 고등학교 때까지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가면서 서울과 지방의 문화 환경에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건 중고교 시절부터다. 그때도 포항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은 거의 다 봤으니까.

-포항에서 개원한지 17년째다. 기억되는 일은.

△병원을 열고 2년 후에 로비에서 조그만 규모의 음악회를 열었다. 시민들에게 작은 문화향유권이라도 주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게 갈수록 판이 커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좌석이 부족했고, 보다 수준 높은 공연을 원하는 참석자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서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를 문화예술회관으로 옮기기도 했다. 포항문화재단이 생기기 전이다. ‘포항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공연을 기획한 것이 보람으로 남았다.

-의사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 직업인가.

△일반론적인 이야기겠지만 환자를 치료하고, 그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의료라는 공공적 영역에서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 좋다. 의사에 대한 신뢰도 거기서 싹이 틀 듯하다. 반면 힘든 건 의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때론 부담이 된다. 색안경을 끼고 의사들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일부 문제 있는 의사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성실한 생활인이다.

-포항의 문화와 역사 등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들었다.

△내 안에는 3가지의 자아가 존재한다. 의사, 문화예술 애호가, 공적 영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인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마음속에 여러 프리즘을 가진 게 나다. 어릴 때부터 공연 보고, 음악 듣는 걸 좋아했다. 고향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도 그런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싶다.
 

-포항지역학연구회 회장이다. 어떤 단체이고 무슨 일을 하는가.

△문화적 관심이 개인적 만족에서 그치지 않고 단체 결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20대 시절 서울에서 내가 맛본 문화의 향기를 포항에도 퍼뜨리고 싶었다. 중앙과 지방의 문화 인프라 차이를 극복하겠다는 희망도 담았다. 포항의 역사와 문화 등 인문학을 연구하고,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조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게 포항지역학연구회다. 2018년 결성됐는데, 관련 강연을 진행하고 양질의 공연을 유치하는 등의 일을 한다.

-포항지역학연구회에선 출판도 한다. 추천할만한 책은.

△연구회가 생기고 3년 동안 7권의 총서를 발간했다. 적지 않은 숫자다. 포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총서 제3권으로 나온 ‘포항 6.25’를 권하고 싶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지역의 역사를 연구해 기록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선 특정한 한 지역의 6.25 관련 역사를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쓴 책은 없는 것으로 안다.

-어떤 역할을 하는 회장이 되고 싶은지.

△비유적으로 말해보자. 만약 운동장에서 야구를 한다면 주전자를 나르고, 선을 긋는 게 내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포항 지역에 대한 관심이 조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묶어주는 끈 같은 존재가 되려한다.

-지역학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이유는.

△누가 시켜서는 못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서 한다. 자기만족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서라고 말하면 될 듯하다. ‘우리는 왜 우리가 사는 지역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게 연구회다. 포항만이 아닌 한국의 모든 지방이 지역학을 보다 면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서울과 동등하게 대접받았으면 한다.

포항의 역사와 문화 등 인문학을 연구해 집대성한 총서들이 모이면 미래세대에게 포항이 어떤 도시인지 알려주는 자료가 될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포항시민들을 위해선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줄 ‘포항학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포항의 정체성을 찾고, 문화적 위상을 높여갔으면….

-포항지역학연구회가 향후 계획하고 있는 일은.

△연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 활동하는 사람이 15명 정도다. 직업도 다양하다. 교사와 의사, 은행에 다니는 분도 있다. 고향이 포항인 사람들보다 포항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이 더 많다. 그게 더 바람직해 보인다. 결국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연구회를 키워갈 것이기에.

총서는 계속해서 발간할 예정이다. 그것들이 모이면 미래세대에게 포항이 어떤 도시인지 알려주는 자료가 될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포항시민들을 위해선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줄 ‘포항학 아카데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포항의 정체성을 찾고, 문화적 위상을 높여갔으면 좋겠다.

-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너는 포항을 정말 좋아하는구나”라는 말이 가장 듣기 좋다. 내가 사는 지역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화만이 아닌 교육과 의료 환경까지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크다. 이 차이가 좁혀지고 극복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조그만 역할이라도 하려고 노력 중이다.

-덧붙일 말이 있다면.

△포항은 해양도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땐 교실 창밖으로 바다가 훤히 보였다. 젊은 시절 포항을 떠나있을 땐 언제나 그 바다가 그리웠다. 바다의 중요성, 해양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다는 포항지역학연구회 세미나나 강연의 항시적인 주요 주제가 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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