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는 우리 민족에겐 유난히 안쓰럽고 애달픈 말로 다가오는 표현이다. 농사를 천직으로 삼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가을 양식이 떨어진 춘궁기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했다. 말이 초근목피지 풀뿌리나 나무껍질이 먹이가 될 리 만무하다.

그래도 굶지 않겠다며 소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삶아 먹거나 진흙 중에서 입자가 고운 백토를 물에 개어 삶아 먹었던 것이 보릿고개 시절의 모습이다. 나무껍질이나 백토가 사람의 몸에 소화될 리 없다. 많은 사람이 배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에 시달렸다.

우리 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보릿고개에 나무껍질과 흙을 먹어 심한 변비로 항문이 찢어졌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보릿고개는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이 시기(음력 4∼5월)에는 혹독한 배고픔과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나가 죽어갔다. 한 맺힌 보릿고개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의창이나 사창에서 쌀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갚도록 하였으나 기근이 오래가면 나라도 버티지 못했다.

보릿고개는 일본이 식량을 수탈한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 당시 거리에는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된 부황증 환자를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1960년대 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하면서 보릿고개라는 말도 점차 사라졌다.

정부의 백신 공급이 늦어지면서 백신 보릿고개라는 말이 등장했다. 백신접종이 늦어지면서 코로나로 인해 생명 유지가 절박한 상황에 몰린 우리 국민의 딱한 처지를 언론이 보릿고개에 비유한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의 한국 이미지가 딱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