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1902~1934)은 평북 출신으로 오산학교에서 김억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인생의 봄인 스무 살 무렵에 꽃다운 시들을 다수 창작했다.

문득 눈을 들어보면, 어느새 세상이 꽃 천지였는데, 잠시 마음을 흘러가게 두고 나니, 그새 그 많던 꽃들이 다 사라지고 나무마다 푸르디푸른 잎들이 솟아올라 있다. 바야흐로, 봄날이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의 삶이 흘러가는 것이나 그것에 대한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계절의 시간은 그렇게 나름대로 흘러가고 있다. 한창 문학을 공부하던 무렵에는 옛사람의 시구들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 풍경 각색이 변하고 있는 것이 입에 물려, 그때 사람들이 오죽 심심했으면 계절의 변화나 살피면서 시를 썼을까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웬걸,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계절이 변하면 어김없이 꽃들이 오밀조밀하게 핀 것이나 나무 끝에 싹이 간질간질하게 터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어, 그래, 이것 말고 노래할 만한 것이 달리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싶게 된다.

요즘은 모두 바쁘게 자기의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기의 삶의 리듬을 연결하기에 바쁜 세상이지만, 가끔 걸음을 멈추고 공원에 머물러 그곳을 채우고 있는 언젠가는 꽃이었던 나무들을 보고 있을 기회가 있다면, 누구든 분명 그 꽃잎, 나뭇잎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 어엿하게 자기 모습을 하고 있는가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봄노래를 하나쯤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아무리 흘러가도 이것은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척박한 바닥 위를 기어코 올라와, 매년 나무 가득 꽃을 피운 뒤, 이제는 온통 푸르게 변한 나무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나무를 보면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을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어김없이 변화하는 계절이라는 감각, 매해 그맘때쯤 변화하면서 순환하고, 또 해가 지나갈수록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에 대해 노래하고 싶지 않았을까? 또, 태양이 전하는 온기가 서서히 길어지며 그에 반응해가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 질긴 생명의 힘을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삶의 태도에 비유하기도 했으리라. 벌써 비슷한 시 몇 구절이나 노래 가사 몇 구절이 머리를 맴돌고 있으니.

 

김소월이 낸 ‘진달래꽃’은 1925년에 출판됐고 이 시집은 그의 유일한 시집이 됐다. 가락이 있는 시 문장을 주로 썼던 그의 시는 그대로 노래로 지어졌다.
김소월이 낸 ‘진달래꽃’은 1925년에 출판됐고 이 시집은 그의 유일한 시집이 됐다. 가락이 있는 시 문장을 주로 썼던 그의 시는 그대로 노래로 지어졌다.

하지만, 봄날은 노래 하나쯤 흥얼거린다면 모를까, 책을 읽기에 그리 좋은 날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기나긴 서사로 된 소설을 하나 읽을라치면 몰려오는 향기들이 마음을 간질여서 금세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봄날 퇴근한 이후의 밤 시간이 유달리 짧았던 것은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며 물리적인 시간이 짧아져서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너무 많은 향기들에 이끌리고 있다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런 날 책을 읽는다면 얇은 시집이나 가벼운 에세이 정도가 좋을 것이다. 마음이 열리고 감정이 솟아올라 공상하기 좋은 봄날에는 문자가 가득해서 빼곡하게 타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으로 머리를 채우기보다는 몇 줄 안 되는 문자들을 바탕으로 한없는 공상을 할 수 있는 글이 어울린다. 이미 져버린 꽃이나 아직 남아 있는 꽃에 대해 노래했던 시들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시에 대한 교육이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긴 하지만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같은 시집은 오히려 차분히 시집 전체를 읽으면 새로운 발견의 재미가 있다. 가락을 붙여 흥얼거리며, 진달래꽃 사이에 켜켜이 들어 있는 감정의 진폭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으리라. 혹은, 요즘 우리에게 꽃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인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찬찬히 읽으며 꽃과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꽃이 피고, 다시 꽃이 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멈춰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툭, 하고 꽃이 피는 소리도 잎이 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봄날 밤이란 결코 길지 않은 것이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