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영 철

코딱지만 한 단칸방 가득 피어나던

따습던 저녁이 없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

희미한 외등만이 비추는 철거지는

여남은 집 어깨 나란히 하고 오순도순 살던 곳

쌀 한 됫박 연탄 한 장 빌리러 갚으러 가서

절절 끓는 아랫목에 발 집어넣던 곳

한글 막 깨친 아이 하나

밥상 위에 턱 괴고 앉아 소리 높여 글 읽던 곳

희미한 외등 따라 내 그림자 길게 늘어져

고단한 생의 흔적이 말끔하게 지워진 길

한 발 두 발 내 구두 소리만 흥얼댄다

(….)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서 칼잠을 자던 단칸방, 비록 비좁고 누추하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사람과 행복이 피어나던 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출되는 자본주의의 욕망으로 새로운 아파트 건립을 위해 철거돼야 하고 쫓겨나야 하는 도시빈민들의 애환이 깊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