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br>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간혹 고향을 찾아보면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릴 적 노닐던 등성이나 벌판은 그대론데 집들과 마을 사람들은 낯선 듯 어렴풋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세상이라 예전의 온전한 고향마을의 정경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갈수록 허물어지고 황폐화돼가는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프기만 하다. 그래도 고향 어귀에 들면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먼 지난날이 손짓하며 부르는 정겨운 세월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옴을 느끼곤 한다.

봄날 고향의 들판이나 골짜기, 시내, 언덕배기 어디를 둘러봐도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10여리 떨어진 초등학교엘 걸어 다니면서 배가 출출해지면 길섶과 산자락의 땅찔레와 시금치, 참꽃, 버들강아지 따위를 꺾어 먹고, 놀거나 무슨 일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칡뿌리를 캐거나 감꽃을 줍고 아카시아꽃을 따서 먹기도 했었다. 약간 달거나 시큼하고 떫고 쌉싸래한 맛을 느끼며 허기진 배를 달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꿈결처럼 아른거리며 그 감칠맛이 입안 가득 배어 나오곤 한다.

“마냥 부풀기만한/설레던 고향 길도/모진 바람 갈퀴 속에/변조되는 쓰라림/빈 가슴 쓸어내리는/가슴 아린 눈물 길//잡초더미 에워싸인/폐허 같은 고향집/마당이며 묵정밭엔/설움만 웃자라고/스산한 바람만 불며/허허롭게 저민다” -拙시조 ‘퇴색’

고향을 떠난지 어언 41년, 요즘 같은 봄날이면 풀 냄새 땅 냄새가 풀풀 피어오르던 고향은 어느새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퇴락해졌다. 60, 7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과 농촌인구의 자연감소로 빈집이 많아지고 휴경지가 늘어남에 따라 전답이 수풀되거나 길마저 사라진 곳이 수두룩해진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농어촌에는 간혹 귀농귀촌도 있긴 하지만, 적막하다 못해 인구소멸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일자리 마련을 위해 농어촌을 떠났다지만, 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어느 지역이든 저출산·고령화의 트렌드를 거스르기는 어렵기에 인구감소에 따른 도심 공동화와 도시기능 쇠퇴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가 상당수에 이른다.

통계에 따르면 30년 후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6%가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 중 30%가 파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으로 경각심을 주고 있다.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국토의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해 있는 양상이다. 최근 대구·경북의 행정통합론이나 지자체마다 출산장려로 인구절벽을 줄이고 주소갖기 캠페인 등을 펼치는 것도 결국 도시소멸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한쪽으로 편중되거나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연계에서 상생하는 인간사회에 균형과 견제, 평형과 중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자칫 공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농이 적절히 어우러지듯이, 큰 세상을 이고 가는 작은 세상과 작은 세상을 품고 사는 큰 세상이 공존 공생하는 조화와 균형으로 지구촌을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