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br>인문글쓰기 강사·작가<br>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사람은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조 해리의 창이라는 심리 이론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네 가지 정보 영역이 있다. 나에 대한 정보를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공개 영역, 나는 모르지만 남은 아는 맹목 영역,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숨긴 영역, 그리고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미지 영역이다.

영화 ‘퍼스트 리폼드’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미지의 영역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메리의 남편인 환경 운동가 마이클은 메리에게 50년후 최악의 지구 상태를 예견하며 낙태를 종용한다. 메리는 하필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목사 톨러에게 찾아와 마이클을 설득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마이클은 자살하고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례식을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톨러 역시 마이클처럼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를 응징하려다가 자살로 생을 마친다. 메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들 눈에도 아기를 출산하고 싶은 순수한 여인일 뿐인데, 메리가 만난 남자들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으면 의문이 풀릴까?

‘프로이트 이후’는 현대정신분석학의 발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영국의 대상관계 정신분석 이론가인 페어베언은, 초기에 내적 대상으로 형성된 대상과의 관계 양식은 이후에도 반복되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메리가 이렇게 비슷한 유형의 남자와 만난 것은 초기에 형성된 내적 대상의 영향으로 비슷한 유형의 두 남자를 선택하게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현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쁜 남자에게 고통 받은 여자가 다시 선택한 남자 역시 이전 남자와 비슷한 유형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간과하거나 뜬금없다고 여기는 ‘마법의 시간 여행’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여행은 메리의 무의식이 두 남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이클이 죽은 후 메리는 무서운 꿈을 꿨다며 한밤중에 목사를 찾아와 이 여행을 제안한다. 메리는 목사를 바닥에 눕게 하고 자기는 목사 위에 엎드려 온몸을 밀착시킨 다음 목사에게 자신의 호흡과 눈움직임, 손움직임을 따라하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처음 간 곳은 숲이다. 그러나 곧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넓은 도로가 나오고 뒤이어 폐타이어가 화면을 채운다. 그 시간여행을 마친 후 톨러 목사는, 풍요로운 삶 교회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덕 자본가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해 자살폭탄 테러를 준비한다. 메리는 구원자가 아니다.

자기 자신과 남에게 알려져 있는 공개적 영역이 아무리 순수해보인다고 해도 미지의 영역에 드리운 어두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커서 공개적 영역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복을 끊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을 공개 영역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미지의 영역이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 노력이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