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릉 왕버드나무 아래서.

쑥전을 부쳤다. 남편의 도시락에 넣어 보낼 반찬이다. 쑥이 넉넉하니 쑥국도 같이 끓였다. 집안 가득 향기가 번진다. 어제 진평왕릉 나들이에서 건져 올린 전리품이다.

벚꽃의 찬란함을 시기한 봄비가 밤새 내리더니 아침 하늘엔 구름이 가득 폈다. 능선이 낮아 하늘 보기에 안성맞춤인 경주로 소풍을 나갔다. 경주 사는 단영 언니를 카톡으로 불러냈다.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보자고 한다. 마침 백률사에서 아침기도를 끝냈다며 절 앞 사거리쯤에서 기다릴 테니 어서 오라며 전화를 했다. 언니는 통행이 많은 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켠 채 나에게 자신의 위치를 열심히 설명했다. 차창을 내리고 서 있는지 언니의 말 사이로 차가 달려왔다가 또 어디론가 급히 내달린다. 그 소리가 자꾸만 몽돌 바닷가에 파도가 차르르 밀려왔다 되돌아 나가는 소리 같다. 언니의 길 안내가 파도의 리듬처럼 들려 가슴이 설렜다.

언니 뒤를 따라 넓은 들 사이로 차를 몰았다. 하늘빛이 좋아 한눈팔고 싶어 천천히 갔다. 목적지는 진평왕릉 앞 카페였다. 왕릉이 하도 좋아 틈만 나면 이곳에 오게 된다는 언니, 자신이 전생에 진평왕의 애첩이었을 거라는 말에 함께 웃었다. 카페 2층에서 내려다보니 능이 얌전히 엎드린 소의 등 같다.

능을 한 바퀴 돌았다. 오래 왕위를 지켰던 왕의 인심인지 주차장은 무료로 개방해 놓았다. 물이 왕릉까지 들어올까 싶어 둘레에 파놓은 수로 위로 작은 다리가 놓였다. 다리를 건너자 멀리에 왕버드나무가 구부러진 허리를 미처 펴지 못한 채 봄을 맞고 있다. 조금 더 걸으니 팽나무가 섰다. 그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왕을 보필하는 장군처럼 버티고 섰다.

경주 능의 주위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경계를 선다. 진평왕의 딸인 선덕여왕릉은 소나무 숲속에 있고, 석탈해 능 주위에도 오릉에도 모두 소나무가 몸을 기울이며 수백 년 자리를 지켰다. 아마도 숲과 경계를 짓기 위해 둘레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이것을 도래솔이라 한다. 도래는 ‘둥근 물건의 둘레’란 뜻이고, 거의 다 소나무를 심어 둘레솔이라 했고 그러다 도래솔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래솔을 심은 뜻은 이승과 저승의 가리개 역할이 크다. 조상이 이승을 보지 않게 하여 걱정을 덜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서 고생하고 가셨는데 저승에서 더이상 이승을 보지 말고 편히 쉬시라는 뜻이다. 권력의 과시이기도 하고, 돌아가셨으니 더이상 이승의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평왕릉 주변엔 소나무 숲이 없어서인지 도래솔은 없다. 능 주변을 걷다 보니 발아래 온통 쑥이다. 봄비를 먹고 뽀얀 쑥이 쑤욱 올라왔다. 쑥밭이다. 누가 일부러 가꾼 듯이 참하게 자랐다. 우연히 찾은 터라 칼도 바구니도 없으니 다른 날 다시 와야지 하며 그날은 산책만 했다.

며칠 뒤, 친구들과 다시 진평왕릉 나들이를 갔다. 오후 햇살이 왕버드나무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능 주변을 서성였다. 한 친구는 사진 삼매경에, 또 한 친구는 낮게 엎드린 제비꽃과 노란 양지꽃에 빠져 허리를 굽혔다. 나와 또 한 친구는 칼로 쑥을 뜯었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나비가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듯 능 주위를 따라 쑥을 뜯었다. 며칠 봄볕에 몸을 불린 것인지 도톰해진 쑥이 몇 분 만에 비닐봉지에 차올랐다.

그 쑥이 오늘 남편의 도시락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 집안 가득 봄향기로 채웠다. 손에 쑥물이 가득 밴 친구는 쑥국을 끓여 집에서 군 생활을 하는 아들을 먹이겠다고 한다. 겨울을 나고 봄에 올라온 첫 쑥은 약이 되니 먹는 이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진평왕이 살아생전 쑥국을 즐기셨나, 선덕여왕이 쑥버무리를 좋아했나, 진덕여왕이 쑥전을 해달라 졸라서인가. 능 둘레에 단군을 낳은 웅녀가 마늘과 함께 먹었던 쑥이 천지다.

도래솔 대신 도래쑥이다. 다음 봄에도 그다음 해에도 도래쑥이 이곳으로 나를 부를 테니 내 쑥밭이라 미리 찜해둔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