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주말에 오신 봄비로 대지가 촉촉하고, 대기는 청명하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지만, 봄날의 정취를 완상하기에 모자람은 없다. 토평(土平) 들과 천변을 향하는 걸음걸이 가볍고, 콧노래 절로 나오는 봄날. ‘동심초’에서 시작하여 ‘4월의 노래’를 거쳐 ‘하얀 목련’을 지나 소월의 ‘못 잊어’로 마무리하는 홀로 ‘걷는’ 노래방. 창고 그늘 밑에 있던 젊은 농부가 슬며시 외면해주는 덕에 황망한 얼굴의 홍조는 겨우 모면한다.

흡족하게 내린 비로 논과 밭이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마늘과 양파가 훌쩍 자라나고, 웃자란 청보리는 적잖게 넘어져 있다. 지난겨울 추위 견디고 시퍼렇게 자라난 보리가 바람에 넘실댄다. 어설픈 날갯짓으로 까마귀는 ‘서(西)으로’ 길 재촉하고, 풀숲의 장끼 푸드득, 소리 내며 밭고랑 사이로 숨어든다. 노란 나비 춤추듯 날고, 곤줄박이 하나 전선에 오래도록 앉아 있다.

발치에는 풀들의 경연이 한창이다. 노랗고 하얀 민들레와 키가 훌쩍 큰 냉이, 여린 몸에 노란 꽃을 단 꽃다지, 자주색 광대나물과 앙증맞은 제비꽃, 과수원 일부를 저희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큰개불알풀, 이제 막 세력을 확장하는 살갈퀴와 우슬(牛膝), 냉이를 닮았으되, 더 크고 거칠지만 둥근 지칭개, 먹을 수 있을까, 오해 부르는 개쑥갓까지 초록 융단이 깔렸다.

길을 걷노라니 완만한 능선 선보이는 장중한 남산 홀로 우뚝하다. 산의 발치에는 진달래와 녹음이 제법 찾아들었고, 종아리 부근에는 자두꽃 자못 화사하다. 허리 부근엔 하얀 산벚꽃이 봄날의 환희를 노래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이파리 단 갈색 활엽수들이 아직 겨울에 잠겨 있다. 상록수들만 예나 지금이나 초록으로 대견하지만, 그리 환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

가던 길 멈추고 상념에 든다. 산 아래는 봄날의 기쁨과 약동으로 넘쳐나는데, 산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겨울 아닌가?! 빛나는 꿈의 계절을 완상하지 못하고 침묵에 잠긴 산꼭대기. 봄은 산 아래서 시작하여 등성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다. 하지만 단풍의 가을과 삭풍의 겨울은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등성이 거쳐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서 좋은 것은 아래에 있고, 고단하고 괴로운 것은 위에 있다.

우뚝한 정상이 있기에 아래쪽 뭇 생명은 봄날을 노래한다. 정상에는 비바람과 땡볕, 칼바람과 눈보라 거세고, 환희의 날들은 훨씬 짧다. 산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꼭대기에 서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을 감내하라! 편하고 쉽고 달콤하며 아늑한 것은 아래 생명에게 넘겨주어라. 단, 정상에 있기에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전망과 장쾌함을 보상으로 받는 것이라고.

하지만 인간 세상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모든 것을 혼자 가지려 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사랑까지 독점하려 든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데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이제 그만하고 웃으며 양보하고, 나누며 물러서면 어떻겠는가, 하고 말이다. 질시의 시선 받는 고독한 강자가 아니라, 축복과 박수를 받는 그런 부류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