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人
이상길 전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

이상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도시를 살게 하는 것은 문화예술이지 아파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상길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도시를 살게 하는 것은 문화예술이지 아파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계명대 특임교수 이상길 전 대구행정부시장을 만났다. 대구의 정치행정을 오래 맡았던 사람을 만났으니 도시행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그가 진심으로 대구를 걱정하는 사람인지, 다만 표가 필요한 기러기 정치인인지. 대구 토박이로서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대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 대구는 진정으로 지역을 걱정하고 대구의 역사와 시대정신에 밝은 안목을 가진 정치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생전 대구에 얼씬도 않다가 투표할 때가 되면 나타나서 ‘보수’를 들먹이는 기러기 정치인이 아니라 텃새처럼 제 텃밭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정치인을 말하는 것이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정치인들이 아닌가. 선거 때마다 대구공항을 공약으로 걸었던 사람들이 몇 명인데 그 공약이 아직도 미정이고, 향후 십 년은 더 우려먹을 태세다.
 

도시를 살게 하는 것은 문화예술이지 아파트가 아닙니다. 대구의 도심은 창조적 에너지의 발원지로 24시간 살아 움직여야 하는 대구의 심장입니다. 지식 노동자와 예술가, 청년들이 활기찬 문화적 창조활동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곳입니다

도시는 인재를 끌어들이고 사람과 일자리를 연결하며, 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개방성, 포용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문화적 창조력이 풍부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행정부시장으로 계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
“대구시에서 22년 근무하고 중앙행정부에서 8년 근무했습니다.”

정치를 하려 했는데 공천도 못 받았다고 웃는다. 이 교수 역시 당선이 필요한 수많은 보수꼴통 중의 한 명이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며, 대화가 끝나기 전에 내 시니컬한 선입견을 걷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진보를 지향하는 진정한 보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보수가 대구의 정치일선에 서 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를 창출할 방안이 거론되어야 할 즈음에, 흉물 같은 아파트만 끝없이 늘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도시를 살릴 인재가 나타나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시가 온통 주거전용화 되고 사방 콘크리트 절벽으로 둘러싸이게 된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도시를 살게 하는 것은 문화예술이지 아파트가 아닙니다. 대구의 도심은 창조적 에너지의 발원지로 24시간 살아 움직여야 하는 대구의 심장입니다. 지식 노동자와 예술가, 청년들이 활기찬 문화적 창조활동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곳입니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프레임과 시대정신이 절박하다며 시카고가 건축으로 미국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파리의 패션이 프랑스를 대변하듯이 대구를 이끌어갈 강한 자부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교수는 문예부흥만이 청년들을 붙잡을 수 있다며, 시민들이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을 갖고 도시이미지를 바꾸어 나감으로서 청년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온통 주거지로 고착된 도시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문화도 줄 수 없다. 휴대폰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는다며, 이 교수는 그 디테일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라고 한다. 도시의 이미지 변신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를 소비하게 만드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지 못하면 그 도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

“교수님이 행정부시장으로 계실 때 도시 전체를 아파트화 시킬 프레임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 아닙니까?”

“파리 시민들이 불편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에 파리가 유지될 수 있듯이, 저는 시민들이 불편을 즐겨야 도심이 살고 대구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도심에서 발생하는 불편에 대한 비용을 재정이 부담해야 합니다.”

도시 건설에도 미적 규범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국에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지은 세인트 판크라스역이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이 교수는 도시 중심이 활성화되어야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데, 온통 주거지가 되어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는 곳으로 가라앉아서는 도시 발전은커녕 인적자원조차 키워낼 수 없다고 걱정한다. 이 도시에 르네상스의 문화가 부흥하길 바란다면 이렇게 주거를 위한 고층건물이 밀집되면 안된다고 성토를 한다. 도심은 일상의 위로와 안정을 위한 기능보다, 에너지 넘치는 열정과 사회적 진정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기차게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이 교수는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철로를 지하로 넣어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합리적이고 사회통합적인 도시발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구는 일제식민지를 거친 근대기의 어려운 시국에도 찬란하게 문화의 불씨를 일구었던 도시다. 그 문화의 중심에 화가 이중섭과 이인성, 이쾌대를 비롯한 화가들이 있었고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 소설가 현진건 외에도 이상정 장군과 서병오, 이일후 등, 대구 근대기에 예술의 꽃을 피웠던 분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신이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대구의 도시행정은 근대기에 그들 문인들의 사랑방이 되어주었던 도심 중앙의 의미 있는 공간까지 높디높은 아파트에 묻어버렸다.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모르겠다.

“이 도시의 정신이 뭘까요?”

“학문을 숭상하고 사물의 본질과 명분,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입니다.”

이 교수는 임진왜란 때 항일 의병 43%가 경상도 의병들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신의 대표적인 예로 국채보상운동을 언급하며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2천만 민중이 담배를 끊어 나라의 빚을 갚았고,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동력이 된 새마을운동과 한국정신문화의 초석이 된 2.28 민주화운동의 바탕이 바로 대구·경북의 선비들이 계승한 성리학이었다고 정의를 내린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의를 실천하며 어려운 시대를 이겨낸 학문의 중심에 퇴계 이황(李滉)이 있었다고. 매암 이숙량과 계동 전경창이 퇴계의 학문과 덕행을 이어 건립한 연경서원이 대구 북구에 있었다. 명종 때에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고, 후에 연경서원(硏經書院)으로 개편되었지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졌다. ’고을 사람들이 능히 스스로 분발하여 강학하는 장소로 삼기 위해서 세운 것이고, 또 도의를 강마하고 풍속을 격려하기 위해서 둔 것이기도 하니 어찌 조금의 도움이 된다고 하겠는가?‘ 매암 이숙량 선생의 ’연경서원기‘의 한 부분이다.

“정치일선에 계셨던 분으로서 청년들이 졸업과 동시에 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보세요?”

“저는 아직 정치를 제대로 시작도 못했지만, 도시는 인재를 끌어들이고 사람과 일자리를 연결하며, 혁신과 경제성장을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성, 포용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문화적 창조력이 풍부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대구가 근대의 문화유산을 창출한 도시임을 증명하듯이 이 교수는 책을 한 권 내놓았다. ‘선비, 그 위대한 뿌리’라는 책이었다. 퇴계 이황의 얼이 서린 연경서원과 도산서원을 비롯해서 도동서원, 옥산서원 등,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근교의 모든 서원과 문화 고적을 한자리에 모은 여행답사의 기록물이었다. 대구시와 중앙정부에서 공무원 생활 틈틈이 대구정신을 되찾자는 대의명분과 실천정신으로 서원을 찾아다니고, 인사동을 비롯한 역사적 유적지를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행정부시장을 지낸 분으로서 대구의 두드러진 문제점을 꼬집는다면?”

“대구가 부정적인 의미의 보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대구는 김굉필선생의 도학, 퇴계 이황 선생의 경(敬)사상, 남명 조식 선생의 의(義)사상을 통합한 경의협지(敬義夾持)가 면면히 이어진 학문화 사상의 용광로였습니다.”
 

이 교수는 대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끌고 가면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한다. 자칫 정치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며, 대구를 중심으로 부흥한 근대문학과 근대음악, 근대미술을 했던 인물들이 대한민국 문화의 정신으로 자리 잡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학문을 바탕으로 문화가 형성되어야 손에 잡히는 문화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문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존 마이어 말대로 문화가 살아야 도시도 살아난다고.

“첨단의료산업 육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계획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되었고, 출범 당시엔 세계적인 의료연구개발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어요.”

국내용 신약·의료기기 개발과 세계적인 신약 및 의료기기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하며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지금 첨단복지는 정체되어 있다. 로봇산업도 마찬가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 창의·창조사회에서의 경쟁력은 문화예술의 토양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달려 있다.

대구의 근대문화예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근대역사가 공백기로 남았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구는 근대예술의 요람이었고 전국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본거지이자 토양이었다. 문화예술만이 대구를 살릴 수 있고, 창조계급인 예술인과 더불어 대구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는 날을 기대하며, 이 교수와의 대화로 모처럼 속이 확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