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욱

아랑은 죽어서 빚으로 남았다

그때부터 영남루 아랑각에는

채권추심무늬나비가 나타나 떠나지 않는다

빛으로 가득한 밀양의 거리를

소녀들이 애벌레처럼 지나간다

자라서 빚의 명함을 주고받으며

집단강간의 기억을 변제할 것이다

밀양에는 나비가 가득하다

채권추심무늬나비는 발명된 종(種)이다

앞으로 또 어떤 종이 나타나

빚의 역사를 빛낼 것인가

교회 첨탑에 대부업의 종소리가

시엠송처럼 울려 퍼진다

빚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한 여자가 신체 포기각서에 날인하며

인생을 연체시킨다

또 한 마리 채권추심무늬나비를 띄워 보낸

신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시인은 아랑과 한 때 세상을 분노케 했던 집단강간의 아픈 기억이 서린 밀양을 얘기하지만, 밀양이라는 한 도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삶이 다 밀양이 아닐까. 끈질기게 얽어매는 빚이라는 것을 들어 인간의 더러운 욕망과 속성을 경계하고 야유하고 있는 것이리라. 신은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알록달록한 나비를 준 것은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