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br>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산골에 살다보니 아침마다 자연스레 창밖의 풍경들을 살피게 된다. 우리 집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풍경 중 으뜸은 큰 살구나무의 늠름한 모습이다. 어제는 살구나무 가지 끝에 물이 차오르고 있음을 살짝 느꼈는데, 오늘 아침에는 붉은 생명의 기운이 완연하였다. 이제 곧 연분홍 살구꽃이 만발할 것이다. 창가에 앉아 나무열전이라는 책을 뒤적거리다 ‘살구나무와 공자의 교육철학’이라는 대목에 눈길이 닿았다. 공자가 자주 살구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하여 학문을 배워 익히는 곳을 ‘행단’(살구나무 뜰)이라 하는데, 지금은 살구나무가 은행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지난해 통계자료를 보니 국가별 GDP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로 기록되어 있었다. 작은 국토면적에 부족한 자원, 게다가 분단국가라는 불편한 현실 등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낸 결과이다. 이처럼 놀라운 성장을 견인한 힘은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원이며 그 바탕이 교육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까닭은 교육적 성취가 신분상승의 가장 유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산업화로 인하여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전까지 우리는 벼농사 중심의 농업사회였다. 농사를 짓는 집에는 반드시 마구간이 있었으니 농사에 황소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힘센 황소는 농사에 꼭 필요한 존재이면서 가난한 농가의 재산목록 1호이기도 하였다. 집안의 기둥인 장남의 손에 그 소의 고삐를 쥐어주며 대학 진학을 하락하던 농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그래서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다던가.

교육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방법을 수정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교육의 특징은 입시위주의 정답 찾기, 압축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압축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창의성과 인성이 실종된 이런 방식의 교육은 다변화된 현실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최근 스포츠계의 ‘학폭’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나 인명 경시, 성폭력 등의 심각한 문제들이 교육의 현주소와 깊게 맞물려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는 창의력의 발현과 바람직한 인성의 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창의적인 교육은 공부 방식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자는 수시로 제자들을 야외에서 가르쳤는데, 주로 살구나무 아래였다고 한다.

필자가 유년을 보낸 시골마을, 담장을 공유한 바로 옆집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마을 곳곳에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가 많았는데, 가지를 꺾거나 심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떨어진 과실을 주워 먹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이웃집 뒤꼍에서 주워 먹었던 달고 찰진 살구 생각에 입안에 군침이 돈다. 열매의 씨방이 개를 죽일 수도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살구, 올해도 어김없이 살구꽃 피는 봄은 오고 꽃샘바람도 매섭게 불어올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는 교육이 올바른 인성의 형성에 꼭 필요한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