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되어 날아 갈 듯한 망양정.

관동팔경을 돌아보는 것은 선비들의 버킷리스트였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라 만 19세가 되면 짐을 꾸려서 강원도로 향했다. 젊어서 못 떠나면 40대 중반의 문인이 되어 길을 나서기도 했고, 그때도 못 떠나면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구경을 했다고 한다. 그 길에 나도 서 보았다.

관동이란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큰 고개를 넘어 여행하는 선비들이 챙겨 갔던 것은 해시계와 나침반과 작은 지도였다. 그리고 멋진 경치를 보고 그림과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내야 하기에 여행용 문방구류도 필수였다. 한양에서도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여행길이라 아주 작게 만든 벼루와 먹과 붓으로 무게를 줄이고 짐은 되도록 가벼이 가져갔을 것이다. 지금 나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걸어서가 아닌 선비들이 천리마라고 깜짝 놀랄 자동차를 타고 팔경 중 하나인 울진에 있는 망양정으로 향했다.

팔경을 한반도 지도를 놓고 보면 위에서부터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는 북한에 있다. 그 아래에 고성의 청간정(淸澗亭)은 둘째가 근무한 부대가 고성에 있어서 면회 시간에 맞추느라 들렀다. 조선 선비들도 금강산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 아래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는 수학여행으로 가 보았다. 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은 가까워 몇 번 다니러 갔지만, 그곳에서 가까운 망양정은 이번이 초행길이다.

강원도로 가는 국도에서 내려서니 왕피천을 따라가라고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한다. 입장료도 없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언덕을 200m쯤 오르니 날아갈 듯한 누각이 나타났다. 왕피천이 동해를 만나 강의 이름을 반납하고 태평양의 품에 안기는 곳에 위치한 망양정이다. 관동팔경 중에 최고의 경치라 칭찬을 받을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자의 기둥은 풍경을 품은 액자의 프레임이다. 옛사람들은 그 안에 산과 강과 바다를 함께 넣어 걸어놓고 즐겼다. 품이 아주 넓었다. 그 품에 앉아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한껏 들이켰다. 어디선가 풍경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람 소리길’이 나왔다. 망양정에서 울진대종이 매달린 종루까지 가는 길에 대나무숲 사이로 풍경을 문처럼 매달아 놓아 바람이 지날 때마다 협주가 시작된다. 댕그렁댕그렁, 사그락사그락. 천천히 걸으며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계단에 앉아 소리에 마음을 기울였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관동팔경을 하나하나 설명해놓은 입간판이 있다. 선비들의 그림으로 예전 풍경을 보여주고 바로 옆에 현재의 사진으로 이렇게 변했어요 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덟 곳 중에 북한에 있어서 가 보지 못한 두 곳의 풍경이 보지 못해서인지 더 절경으로 보여 통일이 되면 꼭 가야겠다고 내 버킷리스트에 저장했다.

이렇게 경치가 좋아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이유는 여기가 송강 정철이 노래했던 그 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는 평해현에 있던 것을 울진 현령이 거긴 월송정이 있으니 하나만 나눠달라 철종에게 읍소해서 옮긴 것이라 한다.

동해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망양휴게소가 나온다. 동해안의 휴게소는 음식 맛집이기보다 대부분 뷰 맛집이다. 특히 망양휴게소는 바다로 통창을 내놔서 바다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전망대도 있어서 그곳에 망원경으로 더 먼 곳의 수평선을 볼 수도 있다. 이 자리가 송강 정철이 바라보았던 관동팔경이라는 설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꼭 들러 정철이 되어 본다.

산을 즐기고 기록한 유산록(遊山錄)은 선비들의 여행 후기였다. 70여 편의 유산록을 참고하여 국립춘천박물관은 정선과 김홍도를 비롯한 여러 선비들의 그림 위에 상상을 덧입혀 관동팔경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음악과 어우러진 풍경이 살아 움직였다. 그 옆에 슬그머니 내 유산록 한 구절을 내려놓는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