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트레이닝과학연구소 박성률 대표

트레이닝과학연구소에서 올바른 운동법을 알려주는 박성률 대표.

지난 시대 운동선수들에겐 “죽도록 열심히, 무조건 지도자가 시키는 방식대로”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지침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최근엔 체육계 전반에 걸쳐 고질적 문제로 제기돼 온 지도자와 학생간, 선배와 후배간 ‘학교 폭력’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대 때부터 체육계에 몸 담아온 트레이닝과학연구소 박성률(57) 대표는 이를 안타까워했다.

 

아시안게임 조정 4위 국가대표로 활약

독일서 ‘트레이닝 방법론’ 등 학위 받아

대학교수·스포츠과학 연구원 등으로

30년 이상 전문 체육지도자 활동 펼쳐

4년 전 고향 포항서 연구소 열어 코칭

“합리적 운동 시스템 널리널리 알려

건강한 포항 만들기에 일조 하고파”

“지도자의 역량이 모자랄 때 생기는 폐해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프로그램으로 교육시킬 능력이 없으면 코치나 감독, 선배가 폭력이란 방식에 빠지기 쉽다.”

포항 대동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조정 선수로 활동했고, 만 19세였던 1982년엔 조정을 시작한지 2년 만에 국가대표가 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20대 땐 6년 동안 독일 체육대학(쾰른 체육대학·Sporthochschule K<00F6>ln)에서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운동 방법을 공부해 ‘트레이닝 방법론’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더 큰 배움에 목말랐기에, 2009년엔 만학도로 다시 독일을 찾아 콘스탄츠 대학(Universitat Konstanz)에서 사회과학 박사 학위도 얻어냈다.

‘이성과 합리성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에서 스포츠과학을 공부한 박 대표는 딱 잘라 말한다.

“운동은 백 퍼센트 과학이다.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다고 그것에 비례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치밀한 계획 속에서 진행돼야 투자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게 바로 운동이다.”

박성률 대표가 공부한 독일 체육대학은 스포츠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47년 세워진 학교다. 현직 체육교사의 재교육도 담당하며, 다수의 스포츠 관련 의사, 스포츠 단체 지도자를 배출한 곳으로 철저한 입학·학사 관리로 독일만이 아닌 유럽에서도 이름이 높다.

비단 운동뿐 아니라 생리학과 역사학, 심리학과 사회학까지 다양한 학문을 접할 수 있는 학구적 분위기 속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박 대표는 ‘시스템의 힘’과 ‘합리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됐다.

이 두 가지 힘을 바탕으로 대학 강단에 섰고, 스포츠 관련 정책을 제안했으며, 크고 작은 부상의 고통을 겪는 운동선수들의 재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 그가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2017년 트레이닝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국가대표 선수, 체육 지도자, 스포츠과학 관련 단체 연구원 등으로 30년 이상 활동하며 쌓아온 전문 지식과 다양한 현장 경험을 활용해 포항 시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봄비가 곱게 내리던 지난 주말. 본사 편집국을 찾은 박성률 대표와 자리를 옮겨가며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물이 아래 요약된 박 대표의 지난 삶과 앞으로의 꿈이다.

◇소년 국가대표에서 청년 독일 유학생으로

‘소년 박성률’은 신체 조건이 좋았다. 게다가 성격도 적극적이었다. 가난과는 거리가 먼 윤택한 가정환경은 그를 성격 좋고, 활발한 아이로 자라게 해줬다.

체육대회가 열리면 육상, 배구, 축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선수로 뛰었다. 그걸 지켜본 고등학교 은사가 조정 선수가 될 것을 권했다.

조정에 입문한 초기엔 어려움도 겪었다. 보통 아이들 사이에선 ‘힘 좋은 친구’였지만,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조정 선수로는 아직 힘이 부족했다. 게다가 일찍 시작한 동료들에 비해 기술도 뒤떨어졌다. 그걸 이겨낸 방법이 새벽 운동과 야간 운동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조정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선 4위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곧이어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대학 조정선수권대회’에선 유럽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거기에 부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목표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청년 박성률’은 좌절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이란 것의 본질이 대체 무엇이고, 어떤 방식을 통해 기대한 성과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가져온 것이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독일에서 찾기로 한 것이다.

“조정 선수 생활을 그만둘 무렵 반복적이고 과도한 훈련을 장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운동선수는 부상의 예방과 회복을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선수로서 못다 이룬 꿈을 지도자가 돼 실현하고 싶었다. 독일로의 유학을 결심한 건 이론과 실기를 동시에 중요시하는 교육 과정을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운동의 종류와 방식에 대해선 아직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스포츠과학에 기반한 조언을 들려줄 계획이다.

 

◇운동선수도 자기 분야 공부해야 ‘능동의 삶’ 살 수 있어

생소한 나라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강의를 들으려면 독일어 습득이 필수였다. 생소한 독일 말과 글을 공부하기 위해 눈썹을 밀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행(?)까지 자처했다. 그 정도 악바리였기에 빠른 시간 안에 독일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6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학업에 열중했다. 스포츠 지도법과 트레이닝 방법론을 이론 전공으로 택했고, 독일체육회와 경기연맹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체육 지도자 양성과정이 실기 전공이었다.

학위와 함께 조정·육상 전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 덕분에 석사장교로 군에서 복무할 수 있었다.

제대 후에는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모든 걸 뒤로 미루고 운동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선생이 아니었다. 박성률은 달랐다. 이런 말로 학생들을 격려하고 고무했다.

“자기 분야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좋은 운동선수는 물론 완성된 인간도 될 수 없다. 책을 읽고 공부해라. 그래야 너희 모두가 수동적 삶이 아닌 능동의 인생을 살 수 있다.”

◇포항시민과 운동을 통해 얻은 행복한 삶 만들어 갈 터

박 대표는 포항시청 직장 운동경기부 총감독으로 일하던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독일에서 배운 선진적 훈련 프로그램과 선수관리 시스템을 현실에 적용해 눈에 띄는 성과도 올렸다. 포항시청 소속 선수들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성취감 또한 컸다.

그간 운동 지도자들에게 ‘코치 전문능력 개발’ ‘스포츠 코칭 철학’ 등을 강의하고, 한국체육대학교 강단에선 ‘코치 역량개발과 멘토링’ ‘엘리트선수를 위한 운동 프로그램’을 가르쳤던 그는 이제 트레이닝과학연구소와 함께 보다 더 가까이 포항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트레이닝과학연구소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건강·체력 증진 방법을 찾아내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의학, 스포츠 교수법, 스포츠 사회학을 연구·지원·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 10년을 이야기하는 박성률 대표의 다짐이 믿음직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운동의 종류와 방식에 대해선 아직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스포츠과학에 기반한 조언을 들려줄 계획이다. 합리적 운동 시스템으로 건강한 포항시민을 만들어내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게 고향에서 가지게 된 새로운 꿈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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