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정선 문치재. /김영미씨 제공

요즘 ‘꽃길만 가자’는 말이 유행이다. 인생길을 가면서 숱한 길을 다 겪는다. 그 고난이 어떤지 다들 알기에 건네는 덕담인데, 인생길이 맑고 평평하면 삶이 재미있을까. 아름답고 향기로운 길만 있다면 삶이 맛있을까.

사는 재미는 희로애락에 있다. 사는 맛은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데 있다. 맵디매운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했다는 기쁨과 쓰디쓴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건지는 개똥철학 같은 깨달음도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사는 재미와 사는 맛 모두 길을 가면서 얻는 것이다.

벼룻길 : 아래쪽이 강가나 바닷가로 통한 벼랑길.

외통길 : 한 곳으로만 난 길.

에움길 : 에워서 빙 둘러 가는 길.

거님길 : 산책길의 옛말.

두멧길 : 두메 산골에 난 길.

뒤안길 : 뒤꼍으로 난 길.

발구길 :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

푸서릿길 : 풀이 자란 정리 안 된 길.

눈석잇길 :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

돌서덜길 : 냇가나 강가에 돌이 많이 깔린 길.

자드락길 :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에 있는 좁은 길.

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간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되었다. 짐승을 잡으러 가면 사냥길, 나무하러 가면 나뭇길, 시장에 가면 시장길, 물건 팔러 가면 장삿길, 놀러 가면 나들잇길, 과거 보러 가면 과거길, 벼슬하러 가면 벼슬길, 죄를 짓고 쫓겨나면 귀양길, 몰래 가면 잠행길, 밥 얻으러 가면 동냥길, 처음 가면 첫길, 누군가와 함께 가면 동행길, 산소에 가면 성묫길, 임금이 가면 거둥길, 길은 목적이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목적에 따라 : 마중길, 배웅길, 과거길

성질에 따라 : 비탈길, 가시밭길, 오르막길

일기에 따라 : 빗길, 눈길, 밤길, 새벽길

재질에 따라 : 황톳길, 자갈길, 돌서덜길

거리에 따라 : 지름길, 하룻길, 에움길

장소에 따라 : 오솔길, 숲길, 산길, 둑길, 고갯길, 논두렁길, 밭두렁길

모양에 따라 : 꼬부랑길, 곧은길

이뿐일까. 사람이 가는 곳은 다 길이다. 길이 없어도 내가 가면 길이고 누군가가 갔으면 그 또한 길이다. 산, 들, 바다,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에도 길이 있다.

첫길, 꽃길, 둑길, 샛길, 잿길, 논길, 산길, 빗길, 눈길, 돌길, 숲길, 큰길, 갓길, 밤길, 곁길, 외길, 촌길, 물길, 하늘길, 진창길, 갈림길, 흙탕길, 지름길, 자갈길, 비탈길, 벼랑길, 황천길, 모랫길, 바른길, 에움길, 돌림길, 고샅길, 언덕길, 외딴길, 나뭇길, 덤불길, 두렁길, 황톳길, 오름길, 내림길, 비탈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시밭길, 돌너덜길

우리네 길은 잘 빠지고 평평하고 반듯하지 않다. 가파르고 질척하고 거칠다. 아슬아슬하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다. 이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진창길을 만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이 튀고 비탈길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고 벼랑길 지나느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길을 잘못 들어 한동안 헤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늘 길을 떠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러, 때로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났으면 길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왜 그럴까. 여자의 길, 배움의 길, 출세의 길, 고행의 길, 설욕의 길, 재기의 길, 군인의 길, 영광의 길, 임금의 길, 신하의 길, 군자의 길, 인생 그 자체가 길이기 때문이다.

길에는 나름의 맛이 있다. 오솔길은 호젓한 사색에 드는 맛이 있다. 갈림길 앞에서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맛이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맛도 있다. 외통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이겨내야 하는 맛이 있다. 꽃길은 화려하고 향기로운 맛이 있고 뒤안길은 쓸쓸한 맛이 있다.

먼저 닿기 위해 길을 가면 길을 알지 못한다. 산길을 발밤발밤 노래하는 사람은 산꽃이 차례대로 피고 지는 까닭을 알게 되고, 들길을 거니는 사람은 알곡이 도담도담 여무는 속도를 보게 된다. 다람쥐며 산새며 송사리며 풀꽃이며, 길섶에 있는 것들은 느릿하게 눈을 맞추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오므로.

진달래, 찔레꽃, 산딸기가 줄지어 피는 산모롱이 길은 통째로 먹어도 맛있다. 짤랑짤랑 가위소리가 먼저 뛰어오는 길은 엿가락처럼 몇 토막 뚝 잘라 먹어도 좋다. 바깥에만 두기 아까워 내 안으로도 내고 싶은 길을 찾아 나는 또 길을 떠난다.(길 위의 명상/김이랑/일부 발췌)

살아봐야 인생을 알 듯, 길을 걸어야 길을 알고 길가의 것들과 눈을 맞추어야 길맛을 안다. 만약 당신이 빨리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그것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도(速度) 위에 있다. /문학평론가 김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