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 문 재

소를 부려 밭을 갈던 아버지의 목청이 가라앉았다

거실의 텔레비전이 가라앉았다

걸려온 전화를 조심스레 받는 어머니가 가라앉았다

안방의 장롱이 가라앉았다

야근한 뒤 점심도 굶고 잠자는 동생이 가라앉았다

화장실이 가라앉았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가라앉았다

안부전화를 건 제철소의 동료가 가라앉았다

쿨룩거리는 냉장고가 가라앉았다

먼 지방의 공사장으로 간 여동생 남편이 가라앉았다

(….)

빌린 돈에 대해 물어야 하는 이자(利子)에 매몰되고 파멸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서글픈 실상들을 나열하면서 시인은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라는 후기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음을 본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고금리의 이자를 내면서도 돈을 빌리고, 원금 상환은커녕 쌓여가는 이자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파멸해가는 시대의 서글픈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