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작고 납작한 그림자를 데리고 가는

그는 늘 거기에 있습니다

햇빛과 구름에 맞서며

가만히 그림자를 내려놓은 그는

말없이 세상 한 쪽을 밝힙니다

그는 짙은 밤 달이 뜨면

그는 긴 그림자로

어둠 속 길을 내줍니다

오늘은 붉은 조등 하나 들고 밤을 건넙니다

누가 무명옷 입고 짚신 신고 먼 길 떠나나 봅니다

그는 밤새

바람 속 하얀 길을 비추고 서 있습니다

가로등같이 골목 어귀 어둠 속에 꼿꼿이 서서 세상을 향해 빛을 내려놓은 존재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외롭게 서서 바람 속 하얀 길을 비추는 가로등, 붉은 조등을 들고 서서 먼 저승길 떠나는 망자의 길까지도 가만히 밝혀주는 가로등을 표현하면서 시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생의 방향, 추구해야 할 가치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