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뭘까 ”생각
에세이집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 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흘리는 분들께 위로

에세이집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를 출간한 배우 이광기.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아이가 잊히는 건 싫잖아요. 준서가 태어나고 새로운 기쁨이 왔지만 그렇다고 석규와의 추억이 흐릿해지는 건 미안해요. 하지만, 과거를 소중하게 기억하더라도, 슬픔은 이제 좀 털고 싶어요.”한창 대하사극과 예능을 오가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하던 배우 이광기는 12년 전 신종플루로 첫아들 석규 군을 떠나보냈다. 한창 씩씩할 일곱 살이었다. 워낙 활발히 얼굴을 비추던 이광기였기에 가족의 아픔은 전 국민이 아는 뉴스가 됐다. 아들이 떠나고 주변에서 “천사가 됐을 거야”라고 다독였지만, 이광기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 내 아이여야 했나요?”라는 원망만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한동안 예술과 봉사 활동에 주력했다. 그 사이 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이 끊이지 않았지만 망설이기만 하다 12년이 흘렀다. 그리고 2020년, 전 세계를 위기로 내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왔다.

최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만난 이광기(51)는 “세상이 꼭 내 마음 같지는 않아서 책을 내면 이걸 또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고, 저도 딱 마음이 서지 않아 미뤄오다가 코로나19가 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12년 전 신종플루 때만 해도 사람들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위험하고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 인지하지 못할 때였죠.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생활패턴까지 다 바뀌었어요. 다들 겉으로는 버티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계신 분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어요. 평범한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들 깨달았고요. 이제 이건 남 일이 아니거든요. 나한테도 올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제야 사명감이 들었죠. ‘이제 정말 책을 써야겠다.’”그는 이번에 낸 포토 에세이 ‘내가 흘린 눈물은 꽃이 되었다’에서 삶이 꽃이라면 죽음은 삶의 뿌리고, 자신에게는 석규가 뿌리였다고 강조한다. “아들이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고,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도록 해줬죠. 우리 가족은 예쁜 꽃 군락이었고, 석규가 떠나면서 하나가 사라져 다신 그 군락을 이룰 수 없을 거라 했는데 더욱 단단해졌어요.” 그러면서 “최근 뵈었던 이어령 전 장관께서 ‘눈물’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사람이 눈물이 메마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마음을 안다는 말처럼, 많은 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을 텐데 그분들께 눈물은 결국 꽃이 될 수 있다는 걸 전해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가족이 중병을 앓거나 죽으면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광기의 가족은 신앙의 힘과 봉사라는 뜻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제가 대단한 게 아니라, 제가 쓰러지면 가족이 다 쓰러지겠다는 생각 때문에 버틴 거죠. 석규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내가 오열하고 딸이 쓰러져 있는걸 보면서 저도 울고 싶었어요. 하지만, 내가 울면 다 무너지겠구나 싶어 참았죠.” 그는 그러면서 “결국,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광기는 틈틈이 메모했고, 아들과의 사진도 아카이브화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부부와 첫 딸 연지, 둘째 아들 준서에 석규의 모습을 합성으로 더한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은 추모공원에도 붙여놓았다고 한다.

유튜브로 라이브 경매쇼를 해 취약계층을 돕고,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도 활동 중인 그는 “내가 천국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석규가 나중에 저한테 ‘아빠 너무 수고했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다른 예능감을 자랑하던 이광기답게 책은 슬픈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엔 연기 인생을 재치 있게 되짚어보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책장을 덮었을 때 슬픔에 잠식되지 않도록 한 배려가 엿보인다.

‘태조 왕건’부터 ‘인수대비’, ‘정도전’, ‘징비록’까지 다양한 대하사극으로 친숙했던 그는 “한류 사극도 중요하지만 공영방송 KBS가 정통 대하사극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내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