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표현이 아름다운 글자이다. 하지만 외래어와 더불어 국적불명의 언어들 때문에 우리말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의 각 분야에 녹아 있는 우리말을 김이랑 문학평론가가 찾아 그 아름다움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함께 만물의 공존과 조화, 상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 주

개나 소 등 동물은 털옷을 입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태어난다. 벌거숭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씻긴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 입히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어배열도 의식주(衣食住)라고 썼다. 음식이나 집보다 옷(衣)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호롱불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며 밤늦도록 바느질했다. 구멍이 난 양말, 무릎이 해진 바지, 단추가 떨어진 점퍼, 끈 떨어진 책가방, 이러한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깁고 호고 홀치고 공글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옷도 가방도 멀쩡해졌다.

바느질할 때, 어머니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천을 덧대고 이으며 한 땀 한 땀 바늘길을 냈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바늘이 가고 실이 따라갔다. 작은 바늘과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머니의 손끝처럼 매우 세밀했다.

깁다 :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

박다 : 두들기거나 꽂거나 틀거나 하여 속으로 들어가게 하다.

뜨다 : 실이나 끈, 노 따위로 얽거나 짜서 만들다.

호다 :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다.

누비다 : 천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가로 세로로 줄이 지게 박다.

볼달다 : 버선의 앞뒤 바닥에 헝겊을 대어 깁다.

홀치다 :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다.

감치다 : 실의 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

시치다 : 여러 겹의 헝겊 조각을 맞대어 듬성듬성 성기게 꿰매다.

사뜨다 :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다.

휘갑치다 :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 휘둘러 감아 꿰매다.

공그르다 : 접어 맞댄 양쪽에 바늘을 번갈아 넣어 가며 실 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떠서 꿰매다.

징거매다 :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게 딴 천을 대고 대강 꿰매다.

송당거리다 : 바늘땀을 다문다문 거칠게 자꾸 호다.

바느질이라는 행위 속에 이러한 동사가 있다. 깁고, 박고, 뜨고, 호고, 누비고, 홀치고, 감치고, 시치고, 사뜨고, 휘갑치고, 공그르고…, 우리말은 행위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하는 소리글자이다. 하나씩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행위와 발음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세밀한 동작을 절묘하게 소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땀 : 바늘로 한 번 뜬 자국.

솔기 : 두 장의 천을 실로 꿰매어 이어 놓은 부분.

매듭 :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

시접 : 접혀서 옷 솔기의 속으로 들어간 부분.

민짜 : 아무 장식이 없는 박음질.

곱솔 : 솔기를 한번 꺾어서 호고 다시 또 접어서 박는 일.

쌈솔 : 겉으로 시접한 쪽을 0.3~0.5cm 내에서 박은 다음 그 시접으로 접어 한 번 더 박는 일.

뒤옹솔 : 바느질한 감의 안을 서로 맞대고 시접을 0.5cm 정도 박은 다음 안으로 뒤집어서 겉쪽의 시접이 보이지 않도록 다시 안에서 박는 일.

가름솔 : 여러 천을 겉끼리 맞추어 한 번 박아 솔기를 양쪽으로 가르는 일.

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

뜨개질 :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

박이옷 : 박음질하여 지은 옷.

도련박기 : 도련이나 치마의 밑단을 박는 작업.

반짇고리 : 바늘·실·골무·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

누비이불 : 누벼서 지은 이불.

김이랑<br />수필가<br />
김이랑
수필가

이렇게 나열해보니, 바느질과 관련된 명사도 동사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늘로 뜬 자국은 ‘땀’이라 하고 맺은 자리는 ‘매듭’이라 하고 솔기를 곱으로 접는다고 ‘곱솔’이라 한다. 안으로 솔기를 싼다고 ‘쌈솔’이라 하고 뒤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뒤옹솔’이라 한다. 게다가 솔기를 가른다고 ‘가름솔’이라 하고 침을 감는다고 ‘감침질’이라고 하니, 그 모양새가 발음에 그대로 살아있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파생어도 많다. ‘일을 마무리하다’에서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왔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한다. 마무르다, 매무새, 매다, 맺다, 맵시 등은 모두 바느질에서 나온 말이다. 삶에서 옷을 뺄 수 없듯이 바느질 용어가 삶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

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네 삶도 바느질과 같다. 살다가 마음이 해지면 깁고, 느슨해지면 단단히 홀치고, 풀어질 것 같으면 말아서 감친다. 큰일을 앞두고는 마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이 끝나면 마무리한다. 인연은 맺고 다하면 끊고 하던 일은 매듭을 짓는다. 정착하고 싶으면 말뚝을 박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