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 사람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

사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더 크고 넓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곳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 오죽하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의 눈을 ‘심미안(審美眼)’이라고 하겠는가.

여기 시각장애인들의 심미안을 열어 눈뜬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보다 더 환한 세계와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안무가가 있다. ‘룩스-빛 무용단’ 김자형 단장이다.

 

발레 전공 무용학원 강사로 일 해오다

결혼 후 늦깎이 대학원 공부에 매진

10년전 시각장애인 신체활동 프로그램에

춤 접목 시켜 시작한 수업이 무용단의 태동

회원들이 모아준 첫 월급으로 만든 통장

2013년 첫 정기공연 열게 된 밑거름으로

작년말 유튜브 통한 언택트 공연 감동 선사

“올해 목표는 비영리법인으로 재설립해

지정기부단체로 등록, 경제적 안정 찾는 것

아동·청소년시각장애인무용단도 만들고파”

룩스-빛 무용단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춤을 선보이고 있다.
룩스-빛 무용단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춤을 선보이고 있다.

포항에서 유년과 소녀 시절을 보낸 김 단장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이며 ‘아름답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은연중에 가르쳐준 푸른 바다와 정겨운 사투리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룩스-빛 무용단’은 시각장애인들이 소속된 단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랄 것 없이 사람들이 놀라며 묻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춤을 추죠?”

그럴 때면 김자형 단장은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이렇게 권한다. “우리 무용수들의 춤을 한 번 보실래요?”

지난해 세밑. 김 단장과 함께 6개월 이상 힘겨운 연습 과정을 거친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이 언택트(Untact) 공연을 펼쳤다. 1시간 정도 진행된 공연을 지켜본 기자의 가슴을 친 건 놀라움이 아닌 감동이었다.

얼마나 꼼꼼한 트레이닝과 고통스런 수련 기간을 거쳐야 저들처럼 눈뜬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어떤 면에선 더 뛰어난 몸짓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감동과 더불어 궁금증이 밀려왔다.

이튿날 김자형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의 삶과, 당신의 춤과, 당신의 무용단과, 당신과 더불어 호흡했을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손과 발을 맞춰 달려가고 있는 김자형 단장과 룩스-빛 무용단원들 이야기다.

-‘춤’이 당신 곁에 온 것은 언제인지.

△5살 때부터 무용학원에 다녔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증조부모와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고, 어릴 적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선 발레를 전공했다.

-현재 단장으로 있는 ‘룩스-빛 무용단’ 창단 이전엔 어떤 일을 했나.

△무용학원 강사 등을 직업으로 가졌고, 결혼 후 늦은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보통의 상식에선 시각장애인이 무용을 한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2009년 대학 조교로 있을 때다. 시각장애인 복지관 팀장이 물었다. “시각장애인의 신체활동 프로그램으로 춤을 출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 주임교수가 어렵다고 했을 때, 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던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게 시각장애인 대상 무용 수업의 시작이었다.

심한 장애로 분류되는 우리 무용수들은 빛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흰색 지팡이에 의지해야 이동이 가능한 그들이 손끝의 느낌으로 몸짓을 스캔하며 춤을 춘다. 10년 전 내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마치 어린아이의 첫걸음처럼 조심스레 춤추던 그들이 “걷기도 힘든 내가 춤을 추고 회전도 할 수 있다”고 좋아하며 눈물짓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이들도 춤출 수 있다. 이들을 춤추게 하자!’란 도전의식으로 2011년 룩스-빛 무용단을 만들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춤 교육법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시각장애인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는 커리큘럼으로 수련한다.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과 회전량 조작법 등을 가르친다.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해 손으로 발동작을 익히고, 제 손을 잡고 익힌 발동작을 이용해 이동해 보고, 제 몸을 손끝으로 스캔해 그 동작의 느낌을 이해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말로는 설명이 쉽지 않다. 우리 무용단원들의 춤을 동영상으로 한 번 봐주길 부탁한다.

-장애인무용단의 운영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엔 10여 명의 회원들이 내게 차비라도 주겠다며 10만원씩을 모았다. 그게 월급이었다.(웃음) 그 돈을 어떻게 쓸 수 있겠나? 그건 무용단 통장을 만들어 저축했다. 그 저금이 힘이 돼 2013년 첫 정기공연을 열게 됐다. 우리 무용단은 임의단체다 보니 직원 없이 혼자서 교육하고, 공연 준비하고, 무용수들을 살펴야 한다. 변명 같지만 나의 부족함이 항상 아프게 다가온다. 사정을 아는 분들이 도와주겠다고 하면 “지정단체가 되면 그때 도와주세요”라고 거절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시각장애인 무용수 교육에 초점을 두고 무용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이 좋은 무대에 올라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시절이 올 때까지의 준비 과정이라 생각한다. 신생 단체나 열악한 단체를 지원하는 정부 시스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심한 장애로 분류되는 우리 무용수들은 빛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흰색 지팡이에 의지해야 이동이 가능한 그들이 손끝의 느낌으로 몸짓을 스캔하며 춤을 춘다. 10년 전 내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마치 어린아이의 첫걸음처럼 조심스레 춤추던 그들이 “걷기도 힘든 내가 춤을 추고 회전도 할 수 있다”고 좋아하며 눈물짓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연습에 땀 흘리는 룩스-빛 무용단원들.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연습에 땀 흘리는 룩스-빛 무용단원들.

-가족과 친구들은 당신의 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왜 힘든 일을 굳이 하느냐” 묻는다. 그럼 난 답한다. 비장애인 회원이나 전공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어렵지만, 내가 손을 놓아 버리면 오늘날까지 함께 해온 순간들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아직은 놓을 수 없다고. 덧붙여 시작장애인 무용수들과의 연습 과정과 공연 무대가 주는 감동은 그 어떤 보상보다 큰 것이라고.

-지난달 말 ‘룩스-빛 무용단’의 언택트 공연이 유튜브를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지난해 정기공연을 열려고 계획했는데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복지관이나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기관 연습실이 폐쇄되면서 전반기엔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2020년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사설기관을 빌려 단원들 중 적극적인 3명의 무용수가 철저한 개인방역 아래 연습을 했다. 더운 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여러분이 유튜브를 통해 본 것은 그 땀의 결과물이다.

-장애인들과 함께 눈물과 땀을 흘리며 당신이 깨달은 것은.

△사실 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서 욕심 많고 교만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장애가 있음에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를 가진 분들과 만나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많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몰랐던 나를 돌아봤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지금도 느낀다. 장애인무용단 단장이 된 건 내가 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웃음)

-시각장애인 무용수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면 좋겠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연습 과정의 어려움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터이고…. 같은 숙소 같은 방에서 밤늦게까지 나누었던 이야기들, 제주도 공연 후 바닷가에서 노을을 느끼며 백사장에 앉아 노래 부르던 일, 맛있는 음식 하나에 아이들처럼 행복해 하는 모습들…. 연습할 땐 안무가로서 단호한 단장일 수밖에 없지만, 연습이 끝나면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의 친구이자 활동도우미가 되고자 했다. 그들과 함께 한 순간 모두가 소중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올해도 공연계가 어려울 것인데.

△향후 언택트 공연시대를 준비하려면 투자와 지원 측면 모두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우리 무용단은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이다.

-룩스-빛 무용단이 꿈꾸고 있는 미래는.

△올해 계획은 무용단을 비영리법인으로 재설립 해 지정기부단체로 등록하는 것이다. 무용단과 무용수들의 발전을 위해선 경제적 토대도 중요하다. 또한, 시니어 무용수와 실업·청년 무용수들을 합류시켜 월급을 줄 수 있는 인력지원사업을 준비할 생각이다. 더 멀리는 아동·청소년 시각장애인 무용단을 설립하는 게 장기적 목표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가 있듯 장애아동이 무용 교육을 통해 미래를 펼칠 수 있게 돕고 싶다. 우리가 춤에 바친 시간과 열정을 따스한 관심으로 지켜봐주시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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