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흰소띠 해 의미

한국화가 이철진
한국화가 이철진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다. 천간의 신(辛)은 ‘희다’라는 뜻을 지니며, 십이지의 축(丑)은 소띠를 뜻한다. 따라서 올해는 ‘흰 소띠 해’다. 소는 우리 민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동물일까? 소의 해를 맞아 소와 관련된 재미난 얘기를 소개한다.

△우리 역사에서 소는 언제부터 등장했나?

기원전 1~2세기 김해 조개더미에서 소의 치아가 출토됐다. 이때부터 소가 가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 따르면 부여에서 소를 비롯해 육축(六畜)을 사육하고, 이것들의 이름을 관명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3~4세기경에 농기를 제작해 논밭을 갈고 수레를 만들어 탔다는 기록이 있다. 이밖에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 벽화에도 누렁소·검둥소·얼룩소 등이 여물을 먹는 외양간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소는 2000년 이상 생구(生口)로서 한집에 같이 사는 가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소는 어떤 동물?

소는 다른 동물에 비해 덩치가 크고 움직임도 느린 편이다. 개나 고양이에 비해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문화에서 차지하는 소는 근면과 유유자적의 대명사였다. 나아가 동물 중에서는 우리와 가장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의 우직하고 성실한 면모는 인간의 게으름을 경책하는 방편으로도 활용돼왔으며,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는 말은 우리 조상들이 소의 이러한 성품을 높이 샀던 것을 보여주는 한 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소는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주역이요, 풍요와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는 부(富)를 불러오고 화(禍)를 막아주는 존재였다. 농가 밑천으로는 소가 최고의 자산이었으며 소 자체가 부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입춘 전후에 풍년을 기원하며 흙이나 나무로 만든 소 인형을 세우기도 했다. 이사한 뒤나 동제를 지낸 다음에 소뼈나 소고삐를 매달아 둔 것은 나쁜 귀신의 범접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소는 근면(勤勉)과 풍요(<8C50>饒), 희생(犧牲)과 의로움(義)을 의미하는 동물로 상징되고 있다.

△소의 특성

소는 생물학적인 측면을 보자. 소(cattle)의 학명은 보스 타우루스(Bos taurus)다. 동물 분류학상으로 등뼈를 갖고 있는 척추동물문(Vertebrata)에 속한다. 점차 범위를 줄여 가면, 젖을 먹여 송아지를 기르는 포유강(Mammalia), 짝수의 말굽을 가진 우제목(Artiodac-tyla), 먹은 사료를 다시 씹는 반추류(Ruminantia)에 해당한다. 더 세분하면 우과(Bovimae), 우속(bos)에 속하는 가축이다.

소의 겉모양은 독특하다. 뿔이 두 개 있고, 털 색은 품종에 따라 다른데 흰색, 황갈색, 검정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소는 체구, 개량된 정도, 얼굴의 생김새, 뿔의 크기, 사육하고 있는 지역 등을 고려해 분류된다. 소를 사용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소고기 생산을 위한 고기소, 젖 생산을 위한 젖소, 일을 시키는데 특히 물건 운반에 주로 이용되는 일소, 여러 목적으로 활용되는 겸용종이 있다.

체구의 크기에 따라서는 덩치가 큰 대형종, 중간 정도인 중형종, 덩치가 작은 소형종으로 나뉜다. 전 세계적으로 450여 종이 있다.

소가 다른 가축과 특별히 다른 점은 위가 네 개라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의 위를 갖고 있는 다른 가축에게는 줄 수 없는 풀 사료를 소에게는 제공할 수 있다. 소가 갖고 있는 네 개의 위 중 제1, 제2 위를 반추위라고 한다. 그 기능은 일시에 많은 양의 사료를 저장하는 데 있다. 아울러 반추위 내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소가 섭취한 풀 등 사료 안에 있는 섬유소를 분해한다. 또 휘발성 지방산의 생산, 단백질, 비타민 B군, 비타민 K군을 합성해 준다.

△소가 들어간 지명은 얼마? …731개

우이도(牛耳島), 우산(牛山), 우도(牛島), 가우도(駕牛島), 우명산(牛鳴山), 와우(臥牛)와 구축(九丑) ….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소’가 들어간 지명은 총 731개다. 용(1천261개), 말(744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고 한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204개로 가장 많고, 대구·부산·세종이 1개로 가장 적다. 경북은 94개였다. 그중 경남 거창군 가북면에는 맹수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고 하는 이야기와 함께, 인간을 위해 온몸을 아끼지 않은 소의 헌신과 의리를 기리는 뜻을 담아 ‘우혜(牛惠)’라는 마을 이름이 붙었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의 고개 ‘소똥령’은 팔려가던 소들이 고개 정상에 있는 주막 앞에 똥을 많이 누어, 산이 소똥 모양이 됐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전남 나주시의 마을 ‘구축(九丑)’은 아홉 마리의 소를 기르면서 마을을 발전시켰다는 전설이 유래가 돼 생겨난 지명이며, 울산시의 ‘우가(牛家)’마을은 소가 병에 걸리자 이곳에 집을 짓고 소들을 피난시켰다고 해 생겨난 지명이다.

△소와 관련한 속담과 덕담은?

-“쇠귀에 경 읽기”: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줘도 ‘이해를 하지 못 한다’는 뜻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

-“느린 소도 성낼 적 있다”: 아무리 성미가 느리고 순한 듯한 사람도 화나면 상당히 무섭다는 뜻.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 성질이나 품행 따위가 좋지 않거나 고약한 모양을 이르는 말.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보기에는 느리지만 꾸준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실속이 있다는 뜻.

-“쇠뿔도 단김에 빼라”: 어떤 일이든 마음먹었으면 망설이지 말라는 뜻,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

-“소 뒷걸음질 치다 쥐잡기” : 우연히 행운을 얻게 된다는 뜻.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무덤덤하게 서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있는 사이를 이르는 말.

-“쟁기질 못 하는 놈이 소 탓한다”: 할 줄 모르는 저를 탓하지 아니하고 도구를 탓한다는 뜻으로, 자기의 능력 부족을 남의 잘못으로 돌린다는 뜻.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큰 소 노릇 한다”: 어떤 집단이나 단위에서 윗사람이 없게 되면 아랫사람이 그 일을 맡아보게 되는 이라는 뜻.

-“도랑에 든 소”: 도랑 양편에 우거진 풀을 다 먹을 수 있는 소라는 뜻으로, 이리나 저리나 풍족한 형편에 놓인 모양을 이르는 말.

-“푸줏간에 들어가는 소걸음”: 벌벌 떨며 무서워하거나 마음에 내키지 아니하는 것을 억지로 하는 모양.

△소를 소재로 한 시문이나 그림은?

소는 우직하고 순박하며 여유로운 천성을 지닌 동물로 인식된 까닭에 조선 시대 선비들은 각별한 영물로 여기곤 했다. 그런 흔적은 소를 소재로 한 시문이나 그림, 고사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특히 당시 선비들은 속세를 떠나 은일자적(隱逸自適)할 수 있는 선계(仙界)에 대한 동경을 묘사하면서 소를 그 이미지로 부각하고자 했다.

소를 잘 그린 조선 시대 화가로는 김제, 이경윤, 김식, 윤두서, 조영석, 김두량, 김홍도, 최북 등이 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에게 소를 탄다는 것은 세사(世事)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 나아가 권세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다는 의미도 아울러 내포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도움말 =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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