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숙씨 옥상에 12월에 핀 미니장미.

옥상에 그녀가 산다. 이른 봄부터 부지런을 떨어 꽃망울을 맺어 우리 집 옥상을 환히 밝히는 예쁜 그녀, 미니장미. 6월 어느 날 꽃을 잘 기르는 친구에게서 화초를 튼튼하게 해 준다며 비료를 선물 받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기특하고 예쁜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에 영양제라 생각하며 비료를 한 움큼 넣어주었다.

그런데 아뿔싸, 애정이 넘쳤는지, 손이 너무 컸는지, 나의 일방적인 애정행각으로 의도치 않게 꽃이 마르고 초록 잎이 연두로 변하면서 우수수 낙엽 지고 쪼그라들었다. 한창 꽃 필 시기에 황량하게 말라버린 그녀를 보며 어쩌면 우리 애들 키울 때도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았는지, 애들이 원치 않은 방식으로 내 사랑을 강요하며 애들을 쪼그라들게 하지 않았는지, 많이 반성했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국화와 구절초의 계절인 가을도 지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왔다. 옥상의 꽃들이 거의 다 사라진 뒤라 옥상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도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엊그제, 얼마나 추운지 어떤 외투를 입고 외출하는 게 좋을지 알아보러 옥상에 잠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여름과 가을 내내 힘없이 늘어져 있던 미니장미 줄기에 발갛게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칼바람을 맞고 일조량도,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녀 혼자 씩씩하게 피어 있었다. 애썼다 애썼어.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꽃 피워야 할 시절에 나의 실수로 마르고 사그라들어 죽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었는데,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이 차가운 겨울에 다시 꽃을 피워줬구나.

두두물물이 스승이라더니, 예쁜 미니 장미에게서 삶의 의지와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 피우는 자세를 배운다. 그리고 우리 애들도 어설픈 내 사랑을 잘 승화해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꺾이지 않고 힘차게 살아남아 장미 같은 삶을 꽃피우길 희망해 본다.

/이홍숙(경주시 안강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