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기 칠곡군수 ‘결초보은’ 산타 변신

결초보은 산타로 변신한 백선기 칠곡군수가 22일 서울 노량진에 거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후손 크두스(10)군과 동생 마피(7)양에게 화상으로 성탄절 선물을 전달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많은 외국 청년들이 대한민국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낯선 타국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많은 6·25참전국 중 하나가 바로 에티오피아이다. 당시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전쟁에 자국 청년 6천37명을 파병했다. 이들은 3주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해 253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다. 하지만 이들 청년들 중 122명이 전사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워준 이 고마운 나라 에티오피아가 지금은 지속된 내전과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가 펼쳐졌던 칠곡군이 에티오피아에 지난 은혜를 갚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에 본지는 호국평화도시 칠곡군이 진행하는 에티오피아 보훈 사업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봤다.

/ 편집자주

 

 

‘호국평화도시’ 칠곡, 지난 2014년 6·25참전국 에티오피아 돕기 본격 나선 후

평화마을 조성·코로나 방역 물품 지원 ‘6037 캠페인’ 전개 등 지원사업 확장

이달 6·25참전용사 후손들 위한 ‘7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성탄절’ 캠페인 전개

지역 어린이들 카드 만들고, 할머니들 손수 목도리 떠 성탄 선물주머니 꾸려

△ 에티오피아에 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하다

‘호국평화’를 도시 정체성으로 삼고있는 칠곡군은 2014년 지역 대표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에 ‘평화의 동전 밭’을 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에티오피아 돕기에 나섰다.

‘평화의 동전 밭’에는 코흘리개 어린이에서 백발의 노인까지 참여하면서 매월 최대 1천260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칠곡군은 이 성금으로 에티오피아 티조 지역에 초등학교 2곳, 식수저장소 2개, 마을 수도 9개 등을 조성했다.

또 2017년에는 에티오피아 디겔루나주 티조 워레다에 위치한 사구레초등학교를 방문해 칠곡군 유치원과 초등학생 5천여 명의 성금으로 건립한 ‘도서관 준공식’을 가졌다.

왜관초등학교 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만든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걱정인형’과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준비한 색안경, 캐치볼, 제기 등의 장난감도 전달했다.

당시 칠곡군 방문단원들은 사구레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걱정인형을 옷에 달아주고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제기차기를 선보이며 놀이방법도 가르쳐줬다.

이어 칠곡군 순심연합총동창회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식수 저장시설의 준공식을 갖고 물탱크에 연결된 마을 수도시설을 통해 주민들이 양질의 식수를 활용하는 것도 확인했다.

대한민국을 가난에서 구한 새마을운동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주에 전파했다. 티그라이주 새마을 시범마을에 새마을 조직 육성을 통한 주민의식 개혁과 새마을회관 건립, 마을안길 포장 등 환경개선, 소득증대사업을 지원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중단됐지만 칠곡군은 에티오피아 짐마케네티 지역에 두 번째 칠곡평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북삼읍 어로1리 할머니들이 손뜨개로 목도리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북삼읍 어로1리 할머니들이 손뜨개로 목도리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 칠곡군의 결초보은

올해 초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당시 백선기 칠곡군수는 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멜레세 테세마(Melese Tessema·90)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회장이었다.

그는 편지에 “코로나19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백선기 군수와 대한민국 국민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70년 전 추호의 망설임 없이 한국을 위해 싸웠듯이 지금이라도 당장 대한민국으로 달려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참여하고 싶지만, 저의 주름과 백발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이라 매일 코로나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 군수의 건강과 나의 자랑스러운 또 하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기도한다”며 “파이팅 칠곡! 파이팅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에티오피아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제대로 된 마스크 하나 없는 에티오피아 실정을 알게 된 백선기 군수는 ‘은혜가 사무쳐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의 결초보은(結草報恩)으로 에티오피아를 돕는데 두팔을 걷어붙였다. 처음부터 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에티오피아를 돕는 사업을 진행했던 백 군수는 이번에도 군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게 바로 ‘6037을 아십니까’ 캠페인이다.

 

생강차를 만든 석적읍 한솔솔파크 아파트 부녀회.
생강차를 만든 석적읍 한솔솔파크 아파트 부녀회.

△ ‘6037을 아십니까’

백선기 군수는 지난 4월 자신의 SNS에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6037명의 헌신에 ‘결초보은’을 위해 6037장의 마스크를 마련하자는 ‘6037 캠페인’을 시작했다.

백 군수는 “이제는 우리가 이들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때”라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을 위한 마스크 기부 동참을 호소했다.

백 군수의 호소는 칠곡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지역에서는 뇌병변 장애 1급인 장윤혁(45)씨가 휠체어를 타고 마트와 약국을 돌며 어렵게 구한 마스크 365장을 기부하는가 하면, 박덕용(86) 6·25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장은 어버이날 자녀가 구해준 공적 마스크 30장을 에티오피아 전우를 위해 기부했다. 칠곡군의 인문학마을 주민과 아파트 부녀회는 참전용사를 위해 재봉틀을 돌려 직접 면 마스크를 제작했고, 8개 읍·면 주민과 공무원은 물론 한국전통가요협회 대구지회, 용인외대부고 등 전국 각계각층에서 마스크 기부가 잇따랐다.

또 칠곡군 박종석 주무관이 직접 제작한 ‘6037 캠페인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유튜브 게시 4일 만에 조회수 5만건을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영상을 접한 가수 소향은 ‘6037 캠페인’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캠페인 시작 2개월 만에 목표로 했던 수량의 5배가 넘는 3만장 이상의 마스크가 모아졌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손편지도 속속 도착했다.

칠곡군은 지난 6월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방문해 군민 기부를 통해 마련한 마스크 3만장 및 손소독제 250병 등 코로나19 방역물품과 손편지 700여 통을 전달했다. 지난달에는 마스크 3만장 추가 전달에 이어 최근에 모인 마스크 6만장도 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이다.

 

2017년 11월 디겔루나 티조에 위치한 칠곡평화마을을 방문한 백선기 칠곡군수가 어린이를 격려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2017년 11월 디겔루나 티조에 위치한 칠곡평화마을을 방문한 백선기 칠곡군수가 어린이를 격려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 6·25참전 후손들을 위한 7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성탄절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를 위한 사업뿐만 아니라 참전용사 후손에게 성탄절 선물 보내기에도 나섰다. 지난달부터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손에게 성탄절 선물을 보내는 ‘7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성탄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70년 전 에티오피아 6·25전쟁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결초보은을 위해 산타로 변신했다.

백 군수는 22일 노량진에 거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후손인 크두스(10)군과 동생 마피(7)양에게 화상으로 성탄절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백 군수는 성탄 메세지와 선물에 대해 설명하고, 참전용사 후손인 이스라엘 씨에 대한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산타로 변신한 백 군수의 선물 주머니에는 코로나19로 외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집에서라도 행복한 성탄절을 보내길 바라는 칠곡군민들의 마음이 가득했다.

소망 어린이집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고 기혼 여성들로 구성된 그림 동아리 ‘그리메’회원은 크리스마스 액자를 제작했다.

지역 인형극단 상상은 내전 중인 에티오피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다문화 가족 전통놀이 체험키트’를 제작했고 수피아 미술관장은 꿈을 그려보라는 의미로 크레파스와 캔버스를 보내왔다.

또 온화한 에티오피아와 달리 한국의 혹독한 추위를 걱정하는 선물도 있었다. 북삼읍 어로1리 할머니들은 손뜨개로 목도리를 제작했고, 석적읍 한솔솔파크 아파트 부녀회는 겨울 감기에 좋다는 생강차를 만들었다.

백선기 군수는 사비를 들여 내의를 마련했으며, 연평도 포격 참전용사는 핫팩을 보내왔다. 석적읍 망정1리 주민들은 참전용사 후손을 위해 김장을 하고 기산면 농부 김종기 씨는 손수 수확한 햅쌀을 보냈다.

이밖에도 대구경북 청년밴드의 헌정곡과 아나운서가 접은 종이학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성탄 선물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원회를 통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참전용사 후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백선기 군수는 “저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산타로 만들어준 칠곡 군민들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며 “70년 전의 희생과 헌신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분들의 따스함만 이라도 돌려주고 싶다. 참전용사에게는 명예를 후손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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