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아주기 ’
최연호 지음·글항아리 펴냄
심리·1만8천원

어떤 기억으로 인해 내 마음이 가라앉고 불쾌하다면 그것은 나의 손실이 된다. 그러므로 아주 사소한 소확혐(小確嫌·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일지언정 다시 떠올리는 것이 두렵고 싫다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을 피하기 위해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을 일으키고 남과 나를 컨트롤하면서 어설프게 개입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에 휘둘려 중요한 본질을 놓칠 수 있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편견과 혐오를 통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평가를 받을 때 한 번 박힌 나쁜 기억은 잊히지 않으며, 타인의 제안을 거절했을 경우에 다수의 시선이 두려워 집단에 동조하게 되는 것도 허물이다. 현재의 감정에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지금 나쁜 기억에 둘러싸여 있으면 미래도 나쁘게 그려지게 되는 현재주의를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고통이 지속되면 그것을 피하려고 일을 벌이며 즐거우면 즐거움이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집착과 강박이 편집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간 ‘기억 안아주기’(글항아리)는 성균관대 의대 학장이자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의사인 저자 최연호 교수가 3년간 ‘나쁜 기억’과 관련된 연구를 하며 우리가 어떻게 ‘나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정리한 책이다.

최연호 교수는 소아청소년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치료에서 명의로 꼽힌다. 약물농도모니터링 및 톱다운 전략으로 새로운 치료 기틀을 마련했으며, 기능성 장 질환에 기계적인 약물 처방 대신 원인이나 배경, 아이들의 심리상태까지 살피는 휴머니즘 진료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최연호 교수의 임상 경험과 뇌과학·심리학, 공학, 경제학 등의 통찰이 담겼다. 임상 현장에서 그가 만난 환자들은 생리적 이유가 아니라 나쁜 기억이 병으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기억 안아주기’는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에 대해 다룬다. 어릴 적 버섯처럼 미끌거리는 식감이 별로였던 걸 경험한 아이들은 평생 그 음식을 멀리하며,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가 놀림당한 아이들은 그 상처가 기억에 뿌리를 내려 회사나 공중화장실에서는 큰일을 보지 못한다. 거절을 많이 당한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려 해도 뇌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고 행동하지 못하게 붙들어둔다.

나쁜 기억은 이상하게 잘 잊히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기억력은 약해지건만, 안 좋은 기억만큼은 어제 일처럼 초롱초롱하다. 두려움의 기억은 편도체가 담당하는데, 그곳에 새겨진 기억은 잊으려 노력해서 더 안 잊히고, 자잘한 꼬리 기억인 주제에 몸통을 흔들어 좋은 판단을 하는 데 그르치는 역할을 한다. 뇌와 꼬리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우 강하게 연결돼 있으며 꼬리(편도체)가 머리 행세(전전두엽)를 하곤 한다.

저자는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기억에 관여하는 부모들을 만나면서 기억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신체 증상과 통증으로 나타나는지를 간파한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고 괴로워서 병원을 방문하지만, 저자는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어버림으로써 몸과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돼서도 반복적으로 떠올라 똑같은 일상이 누구에게는 행복으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불행으로 각인되고,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려서도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게 한다.

젊어서 전전두엽을 충분히 이용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치매 환자는 순하고 ‘예쁜 치매’로 가는 반면, 나쁜 기억에 집착하고 불안에 사로잡힌 치매 환자는 화를 잘 내는 ‘미운 치매’로 간다고 한다. ‘나쁜 기억’을 연구한 저자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건망증과 인지 장애를 앓더라도 나쁜 기억은 끝끝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쁜 기억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첫째, 회피하지 말고 둘째, 나를 내려놓으며 셋째, 마음을 자각하고 넷째, 부딪혀보는 것 등의 네 가지 방법으로 나쁜 기억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안아주면서 자신과 타인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는 경험을 주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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