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민 호

집이 우리를 떠나면 빈집이 된다

우리가 집을 떠날 때도 빈집이 된다

우리는 자주 떠나가려 하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집은 아직 빈집으로 있는데

그래도 그리움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러니 빈집은 완전 빈집 아니다

그 속에는 아직 옛날 화려함이 남아있고

빈방마다 그때의 화려한 꿈들이 들어 있어

빈집은 결코 빈집만은 아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살고

지붕 위에도 아직 참새들이 살고 있다

그 옛날을 노래하며 집을 지키는데

그래서 빈집은 아주 빈집이 아닌데도

집은 지금 빈집으로 남아 있고

하늘에는 빈 하늘만 남아있다

경주의 원로 서정시인 정민호의 무욕과 달관의 정신이 스며 있는 시다. 한 때는 오순도순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들이 떠난 집은 텅 비어 외롭고 쓸쓸하기 짝이 없지만, 시인의 눈에는 그 빈집이 빈집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직 삶의 화려한 흔적들과 꿈이 서려 있고, 잡초도 참새들도 그 집에 와서 살고 있으며 지붕 위에는 빈 하늘이 빈집과 하늘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는 시인의 그윽하고 넉넉한, 따스하고 다감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