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쪽샘 44호분서 금동관·금귀걸이·은장식 도자·돌절구 등 출토
무덤 주인은 신장 150㎝ 내외 여성… 축조 연대는 5세기 후반 추정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사진은 출토된 바둑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사진은 출토된 바둑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4년부터 진행한 44호분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중 지난달 금동관을 비롯해 금드리개 1쌍, 금귀걸이 1쌍, 금·은 팔찌 12점과 금·은 반지 10점, 은제 가슴걸이 등 장신구 일체,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장식 수십점, 바둑돌 200여점, 돌절구와 공이,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으로 인식하는 운모(雲母·규산염 광물의 일종) 50여점 등을 한꺼번에 발굴했다고 7일 밝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장신구의 조합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런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됐던 디자인이다.

장신구의 구성(조합상)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축조기의 최상층(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가 아닌 은장식 도자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추정했다.

무덤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 금팔찌의 형태가 금관총 출토 유물과 유사해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

출토 유물 중에는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적 없는 형태와 크기의 비단벌레 금동장식도 있다. 이 유물은 무덤 주인 머리맡의 부장품 상자가 있던 자리 상부에서 수십점이 나왔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 가장자리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제작했다. 크기는 가로 1.6㎝, 세로 3㎝, 두께 2㎜ 정도다.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50㎝ 전후로 추정되는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

금동관과 은허리띠 장식은 현재로선 정확한 문양과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추후 보존처리를 통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 등이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춰볼 때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계층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됐다.

연구소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이 바둑을 뒀고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있는데,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 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가 대부분 남성으로 추정돼 당시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됐지만, 이번 피장자가 왕족 여성으로 추정돼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44호분 발굴조사는 현재 매장주체부에서의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무덤 둘레에 쌓는 돌인 호석(護石) 주변에서의 제사 흔적, 봉분 성토(흙쌓기)방식, 돌을 쌓아 올린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의례행위 등이 확인됐다.

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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