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꽃 라넌큘러스 버터.

라넌큘러스의 계절이다. 개구리 왕자처럼 볼품없는 미나리 같은 줄기에서 장미처럼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이 있다. 바로 라넌큘러스. 이름도 개구리를 뜻하는 라틴어 ‘라이나’에서 유래했는데, 주로 연못이나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300장이 넘는 하늘하늘한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어 얼핏 보면 장미로 착각하기 쉬운데, 겉모습은 습지가 아니라 볕이 잘 드는 정원에 피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생김새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꽃이라 습도가 맞지 않으면 쉽게 잎이 마르거나 시들어 버린다. 게다가 두꺼워 보이는 줄기는 속이 텅 비어 있어 꺾어지기 쉬우므로 살살 다뤄야 한다.

꽃병 속 꽃을 오래가게 하려면 아스피린을 넣어주라는 기사를 어제 봤다. 집에 아스피린은 없고, 타이레놀이 있길래 넣어주고는 걱정이 되어 밤에 약사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타이레놀도 괜찮지? 하고 물었더니 아침에 연락이 왔다. 아스피린은 산성이라 오래가게 할 수 있는데, 타이레놀은 아니란다. 이런!

아침에 약물 오남용으로 축 처진 라넌큘러스 버터를 보니 미안하다. 그래서 얼른 줄기도 자르고 물도 갈아줬다. 약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적극적인 융통성을 발휘하는 건 위험하니 특히나 조심해야겠다. 융통성 발휘의 나쁜 예다.

약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까스명수이다. 어릴 적 배앓이 할 때마다 엄마가 사주신 약이다. 그 맛이 어찌나 맛난지 먹고 싶을 때마다 융통성을 발휘해 배가 아픈 척을 했다. 엄마는 장에 넣어두었던 한 병을 꺼내서 따 주셨다. 아 감질나는 양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소화 안 될 때 내 몸무게를 생각해 꼭 두 병씩 먹는다. 한 병은 성에 차지 않아서이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건만 병의 크기는 왜 아직 그대로인지. 요구르트도 대용량이 나왔는데 까스명수는 왜 큰 병을 안 만드는 걸까.

장식장 위의 라넌큘러스가 물끄러미 이런 나를 본다. /이홍숙(경주시 안강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