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에른스트 곰브리치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입문서로 미술사의 흐름을 가장 교과서적으로 서술한 책은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서양미술사’이다. 1950년 파이돈 출판사가 소개한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어를 포함해 25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700만부 이상 판매된 미술사 관련 서적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스테디셀러이다. 그런데 정작 책을 쓴 저자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아 곰브리치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곰브리치는 190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은 영어식으로 곰브리치라고 발음되지만 독일어식 발음으로하면 ‘곰브리히’가 맞다. 곰브리치는 교육수준이 높은 오스트리아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곰브리치는 1928년 빈 대학에 진학해 미술사를 전공한다. 당시 빈 대학은 ‘빈 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미술사의 학문적 전통을 세운 주요 인물들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미술사학은 이제 막 주요 대학들에서 학과로 설치되기 시작한 신생학문이었기 때문에 연구방법에 대한 학문적 토대가 조금씩 정립되어 가던 상황이었다.

빈 대학 재학 중 곰브리치는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잠시 빈을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시간을 보냈다. 뵐플린은 ‘미술사 기초개념’이라는 저서를 남긴 미술사학인데, 미술작품의 형식 분석적 연구방법 발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두 대의 디아프로젝터를 이용해 두 점의 미술작품을 나란히 투사해 비교하는 강의 방식을 처음으로 선보인 사람이 뵐플린이다.

곰브리치는 1933년 이탈리아 만토바에 자리한 줄리오 로마노의 팔라초 델 테를 연구해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5년 청소년을 위한 짧은 세계사를 출판했고, 이듬해인 1936년 런던으로 건너갔다. 1944년부터 런던의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는데, 바부르크 연구소는 서양미술사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곳으로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부르크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 아비 바부르크(1866∼1929)이다. 바부르크 가문은 함부르크에서 은행을 운영하던 대부호였고, 아비 바부르크는 가문의 장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아야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고전 문헌과 역사 그리고 미술사 연구에 심취해 있었다. 아비 바부르크는 동생에게 가업을 양보하는 대신 평생 원하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

그 후 동생의 경제적 지원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했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함부르크에 미술사 연구소를 설립한다. 하지만 나치의 등장으로 연구소를 안전한 런던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편집증적인 성격의 아비 바부르크가 발전시킨 미술사 연구 분야는 도상학이다. 도상학은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밝혀내는 미술사 연구 분야로 하나의 작품을 역사, 문화, 정치, 사회적 관점 등을 통하여 다층적으로 해석한다. 바부르크와 함께 도상학 연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미술사학자로는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3)가 있다.

곰브리치는 1944년부터 바부르크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50년 시대를 초월한 미술사 스테디셀러 ‘서양미술사’를 세상에 선보였다. 곰브리치는 1959년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어 1976년 까지 직책을 이어갔으며, 1970년 바부르크의 일생과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전기를 출판했다. 지금도 런던에는 바부르크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바부르크 연구소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서양미술사 연구소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