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이인선 전 경북도 경제부지사

대구 시내 공공도서관을 찾아 경제 관련서적과 시집을 살펴보는 이인선 전 부지사.
대구 시내 공공도서관을 찾아 경제 관련서적과 시집을 살펴보는 이인선 전 부지사.

의외로 담담했다. 지난 4월 총선 대구경북에서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은 후보자 중 유일하게 낙선한 이인선 전 경북도경제부지사를 만나러 갈 때만 하더라도 아직은 낙담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유로움이 넘쳤다.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와 석사·박사 과정까지, ‘식품미생물학과’라는 실용학문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한 후에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이 전 부지사는 여성으로서 대구경북에서 적잖은 자취를 남겨 회자되는 얘기가 많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ST) 원장을 거쳐 계명대학교 부총장을 지냈으며, 2011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에 취임하고 4년 동안 정무와 경제부지사를 역임했다. 학계와 정계에 몸담는 동안 열정적으로 도전, ‘일벌레’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학계·정계까지 굵직한 역할 두루 맡아

식품미생물학으로 이학박사 취득 후 교수의 길

계명대부총장·DGST원장·경제자유구역청장

여성 최초 경북도 정무·경제부지사까지 지내

21대 총선 땐 홍준표 의원과 자웅 겨루기도

‘일벌레’다운 화려한 수상 경력

건국훈장 애족장 받은 조부 故 이준석 지사 이어미생물학 연구활동 공로로 과학기술유공 훈장

제1회 대구시 여성대상·여성공학인 대상

지방자치경영대상 지역공헌특별상 등 ‘다채’

앞으로 계획은…

“가르치고 연구할 때 만큼 자신감있게 도전

학생들의 벤처창업·취업 위한 디딤돌 될 터”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교수와 미생물학 면역학 연구자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지역에 국가기관을 만들어서 기업과 학생들을 지원하고 자원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기업이 잘 되어야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둥지를 틀고 살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의지가 그녀만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학자로서의 면모와 정계 일선에서 쌓아온 내공이 그녀의 전체적인 커리어를 형성해 준 느낌이었다. 지역협력연구소장으로 10년간 나라 일을 하고 대구과학기술원 원장을 지내며 대구시와 기업, 학교의 컨소시엄으로 전방위적인 일을 하며 늘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려고 애썼던 그녀다.

그 노력을 평가받아 2011년에 과학기술유공훈장을 수상했다. 할아버지 고(故) 이준석 지사도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며, 나라 일에 헌신하라는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고 한다. 국제소화기암학회 젊은 과학자상과 제1회 대구시 여성대상, 여성공학인 공공부문 대상,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지역공헌특별상 등 수상 경력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 제4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등 이력도 화려하다.

제21대 총선에 출마, 역전된 결과로 좌절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언제든 불러주면 국민을 위해 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당찬 결의를 보였다. 2019년에는 산업부에서 주관한 전국경제자유구역 성과 평가에서 개청 이래 처음으로 최우수 등급을 달성하고,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지역공헌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발전에 기여한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좌우명이 무엇인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죠. 중국 당나라 임제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인데, 수처작주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이고, 입처개진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뜻입니다.”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지역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제 부지사를 지낸 관록의 이 전 부지사는 아직도 에너지가 넘쳤다. 대구·경북민들이 맡기는 것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당찬 의지를 내보였다. 대학과 공직에서의 오랜 경험을 지역구와 국가를 위해 더 낮고 뜨거운 가슴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뜻도 숨기지 않고 쏟아낸다. 서로 성격이 다른 구미의 창조경제핵심센터와 포항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히든챔피언벤처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청년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주려는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그녀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

-자신의 꿈에 이르기 위해 청년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이 전 부지사는 현대의 청년들 사이에 맴돌고 있는 ‘3포’를 무척 걱정했다. 3포란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까지 포기하는 심각한 상황을 이르는 말인데,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취업이고 경제적인 바탕으로 홀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움과 곤궁함에 빠진 청년들을 진심으로 염려하기도 했다. 이 부지사는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를 일으켜야 한다고, 세상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살얼음판인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고. 자식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던지고 싶지만 어머니 아버지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는 게 삶이라고 조언한다. 삶이 모질고 가혹한 것은 대타를 허용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고 거듭 역설한 그녀는 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여성들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자신 역시 여성이어서 받았던 불합리한 면을 언급하며, 이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불신을 갖고 있으며, 여자와 남자 사이의 차이를 100%라고 꼬집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삶 자체가 생존경쟁의 연속이고, 세상은 가차 없는 전쟁터이니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서는 여성이 가일층 스스로를 가꾸고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지역사업과 정치 쪽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요.

“의과대학 면역학 연구원을 맡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 전 부지사는 이과 학문이 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책적으로 연결돼 공직에 들어서게 되었다. 식품가공학과 교수였던 그녀는 대구과학관 유치, 생산기술연구원, 기계연구원, 정보통신연구원 등 수목원에서 테크노폴리스까지 13km의 긴 터널을 뚫으며 20년간 공직 관련 길을 걷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사는 게 자신의 일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접목됐다. 그런 마음가짐이 그녀를 여성 최초의 전통미생물자원연구센터장과 계명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을 지내게 했다. 또 여성 최초의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일하며 매순간마다 온 힘을 다했다.

-총선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졌는데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부족했기에 패배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운도 없었고… 여성이어서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총선에서 졌다는 원망을 들을 때는 솔직히 약간 섭섭했었지요.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대구 선거 지형이 아직은 여성을 약하다고 판단하는 인식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바뀌었으면 합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면 다 받아주는, 기준 없는 당권의 체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그녀는 말 속에 총선 패배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교수직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정치인이 아니라 미생물학을 연구하며 학자로 살다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그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운명의 흐름이 나를 정계로 이끌었어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스펙·

배경에 주목하기보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을 불러서 아낌없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지역사회 전반의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 다시 연구자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쪽으로 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벤처 창업이나 기업에 취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역에서 헌신하는 겁니다. 그 분야는 다른 일보다 더 잘 할 자신도 있구요.”

내강외유(內剛外柔)! 그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말이 서너 번 떠올랐다. 최초의 여성 부지사로 테크노폴리스 터널을 뚫는데 필요한 예산타당성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내면에서 조용히 끓고 있는 강한 힘의 작용으로 여겨졌다. 온유하면서도 차분하게 한 걸음씩 내디디며 먼 일까지 내다보는 직관으로.

-자신의 자리에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으세요.

“요즘 그간의 발자취를 자주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아직은 모자라지만 정말 지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았다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대구 경북도 이제 지역에서 평생을 부대끼며 산 인사들을 좀 더 포용해 줬으면 합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임기 동안 머물다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지역 출신 일꾼들은 다르잖아요. 우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스펙이나 배경만을 주목하기보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을 불러서 아낌없이 능력을 활용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지역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일꾼을 놓치지 않는 지역사회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인선 전 부지사. 그녀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면역학교실 연구원으로 있을 때 암 예방 연구와 장기이식의 조직적합성을 10년간 연구했다. 함황식물인 브로콜리, 양배추에서 추출한 예방 물질을 췌장암에 걸린 햄스터에 먹여서 암 예방 효과를 살피는 연구였고, 현재 캐비신이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어떤 식품이 암으로 표식되기까지 8년이 걸리는데 1992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재단에서 15명을 각 분야별로 선정한 선진연구 교류에 선발돼 암 예방 연구에 18개월을 보낸 그녀가 자신만의 연구를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든 것은 그녀가 지역사회와 정치에 쏟은 열정이었더라면 암 연구 분야에서 더 큰 업적을 쌓았고 빛났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