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자씨의 동서가 문앞에 살짝 두고 간 귤.

현관문 앞에 동서가 귤 한 봉지를 두고 갔다.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덤으로 얻은 것. 시월드이다. 그중에 제일 고마운 존재가 동서이다. 내가 시집가서 십 년이 지나도록 시동생이 독신이어서 동서 구경을 못 하다가 뒤늦게 맞은 식구이다.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내게 잘 맞춰주며 시댁에 적응을 잘해주었다. 그래도 신세대답게 내가 바꾸지 못하던 것들도 웃으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아버님 앞에서 눕는다던가 바닷가 시댁에선 먹지 않던 배추전과 솎아낸 푸성귀로 만든 겉절이도 슬쩍 밥상에 올려놓았다. 나는 조심스러워 어머님이 하라는 음식만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동서의 음식을 좋아한다.

똑순이라 물건도 잘 고른다. 시댁에 냉장고나 세탁기를 바꿔드려야 할 때도 전자매장에 가서 장단점을 잘 따져 묻는 걸 보면 매의 눈을 가졌다. 여기저기 인터넷에 가격도 찾아서 비교하고 찬찬히 살핀다. 나처럼 대충 가격 보고 사는 그런 엉터리 주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와 닮은 점이 하나 있다. 건망증이 심하다. 그것도 아주 심하다. 어느 정도냐면 시댁에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자기 부츠 대신 어머님 슬리퍼를 신고 있던 일, 조카가 아기일 때 아기 짐을 몽땅 현관에 두고 가기도 해서 어머님을 놀래켰다. 그래도 ‘얼라’를 놓고 간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어머님은 내 건망증을 보고 걱정했는데 더한 아래 동서를 보더니 두 손 다 들었다 하셨다며 웃으셨다. 젊디젊은 나이부터 그러면 나이 들어서 어쩌려고 그러냐고 한걱정이 늘어지셨다.

그런 동서가 자꾸만 헛갈리는 일이 있다. 남편과 시동생이다. 얼마 전에도 호박잎을 따다가 저기 고추밭에서 오이고추를 따는 남편 뒷모습에다 “여보”를 외치며 찾았다. 남편이 고개를 들자 “엄마야” 하며 방으로 뛰어들어 간다. 자주 그런다. 난 분명 잘 생긴 시동생과 조금 더 잘생긴 우리 남편이 구별되는데 말이다. 동서 덕분에 또 한 번 웃고 간다.

/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