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인 수

외곽지 야산 버려진 집에

한 사내가 들어와 매일 출퇴근한다

전에 없던 길 한가닥이 무슨 탯줄처럼

꿈틀꿈틀 길게 뽑혀나온다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

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은

세월이 부지기수다

마당에 나뒹구는 소주병,

그 위를 뒤덮으며 폭우 지나갔다

풀의 화염이 더 오래 지나간다

우거진 풀을 베자 뱀허물이 여럿 나왔으나

사내는 아직 웅크린 한 채의 폐가다

폐가는 이제 낡은 외투처럼 사내를 품는지

밤새도록 쌈 싸먹은 뒤꼍 토란잎의 빗소리

삽짝 정낭 지붕 위 조롱박이 시퍼렇게 시퍼런 똥자루처럼

힘껏 빠져나오는 아침, 젖은 길이 비리다

어느 폐가에 스며든 사내와 폐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펼치며 시인은 부정과 긍정,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진 길을 배꼽이라 지칭하고 있음을 본다. 현대인들의 서글픈 실존의 모습을 꿰뚫는 시인의 깊은 눈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