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문학동네 펴냄
소설집·1만4천원

‘관념적이고 사유하는 작가’이승우(61·사진)씨의 열한번째 소설집이자 첫 연작소설집 ‘사랑이 한 일’(문학동네)이 나왔다.

이씨는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 노벨상을 받는다면” 후보 0순위로 꼽는 소설가다.

인간 실존의 문제, 성과 속의 이원성 극복, 초월자와 인간의 괴리가 데뷔 이래 줄곧 화두였던 이씨는 사십 년 가까운 작가인생을 갈망 너머의 구원에 대한 천착으로 채우며 독보적인 성취를 거둬왔다.

한국소설로는 흔치 않은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통찰로 ‘생의 이면’을 파고든 그가 신작 소설집에서 ‘창세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삶의 궁극적 물음들을 마주 세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의 텍스트로 ‘창세기’를 다시 읽고 다시 쓴 밀도 높은 작업, 그 가운데 키워드가 돼준 단어 ‘사랑’, 이 책은 이승우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이 총동원됐다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집은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에 대한 ‘창세기’의 일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다섯 편의 작품들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을 한가운데 두고 시간순으로 앞뒤에 두 편씩이 더 배치돼 있다. 자기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주는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인 ‘소돔의 하룻밤’,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부당하게 내쫓기는 하갈의 이야기 ‘하갈의 노래’가 앞의 두 편, 이삭이 느끼는 기묘한 허기와 그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를 향한 편애에 대한 소설적 해설이라 할 수 있는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가 뒤의 두 편이다.

맨 앞자리에 놓인 ‘소돔의 하룻밤’과 표제작 ‘사랑이 한 일’은 우선 독특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소돔의 하룻밤’의 경우 소돔의 멸망 과정을 보여주는 다섯 개 장면의 문장이 반복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소설의 문장이라기보다는 논리적 변증에 가까운 치밀하고 끈질긴 문장들이다. 성경 텍스트 속 서사의 빈자리를 작가가 디테일하게 채우며 추론하고 납득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표제작 ‘사랑이 한 일’에서 반복되는 문장은 ‘소돔의 하룻밤’과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 ‘소돔의 하룻밤’이 이야기를 따라가되 작가가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그 흐름을 밀고 나가는 방식이라면, ‘사랑이 한 일’은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이 반복되며 화자인 이삭, 그러니까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바쳐라”라는 신의 명령과 그 명령을 따른 아버지 아브라함 양쪽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자 하는 인물의 내적 투쟁을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손에 죽을 뻔했던 아들이 스스로 묻고 답한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누구에 대한 사랑인가, 누구의 사랑인가. 그 사랑이 조금 덜했다면 신은 아버지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를 제물로 바치겠다 순종하지 않았을 테고, 다시 신이 아버지에게 ‘멈추라’고 하지 않았을 일인가.

‘허기와 탐식’은 나이든 이삭과 그의 두 아들 에서, 야곱의 이야기이다. 맏아들 에서가 아닌 둘째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부장의 권리를 가로채려 하고, 여러 사건 끝에 참회를 한 야곱이 적통을 잇는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작가 이승우는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왜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편애했는가. 아버지의 칼날에 죽을 뻔했던 그에게 남은 상흔과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이복형 이스마엘이 잡아준 들짐승 고기의 맛. 그것이 사냥꾼인 맏아들 에서에게 투사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삭의 편애와 축복은 빗나가고, 자기 것이 아닌 축복을 받은 둘째 야곱은 도망치듯 집을 떠난다. “거의 최초로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존재, 고아이고 나그네가 된 시간에, 크게 두렵고 깊이 외로운 그의 밤 광야의 자리로 그분이 찾아왔다.” “너와 함께하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겠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의 편애는 받지 못했으나 신의 편애를 받은 야곱의 이야기 ‘야곱의 사다리’로 소설집은 마무리된다. /윤희정기자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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