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실리아
숨을 데가 필요했던 게지
맺힌 설움 토로할 품이 필요했던 게지
절대가치라 여겼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더르는 깊이 배신당해
이룬 것 죄다 회색도시에 부려 놓고
본향으로 도망쳐와
산목숨 차마 어쩌지 못하고
미친 듯 홀린 듯
오름이며 밭 담이며 등대 이정표 삼고
바닷바람 앞장세워 휘적휘적 쏘다니다
설움 꾸들꾸들해질 즈음
덜컥 길닦이 자청하고 나선 여자
처처 순례객들 길잡이가 된 여자
그러다 정작 자신만의 오시록한 성소 다 내주고
서귀포 시장통 명숙상회 골방으로 되돌아온 여자
설문대할망의 헌신이니
여전사니 말들 하지만
알고 보면 폭설 속 키 작은 홑동백 같은 여자
너울 이는 망망 바다 바위섬 같은
그 여자
이 시에 나오는 올레 그 여자는 어쩌면 어느 날 육지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도 조천으로 옮겨간 시인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들이며, 기다림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외로운 홑동백 같은 올레 여자의 삶이 자신을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