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권익위원장 현장 찾아
“정부가 고통 해결 못 해 죄송”
희망농원 정주 환경 개선 약속
경주시·포항시 간 갈등 빚었던
형산강 폐수 문제 해결도 기대

28일 오후 40여 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한센인 집단마을인 경주시 천북면 희망농원을 방문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낙영 경주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일행이 마을을 살펴보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kid@kbmaeil.com

지역 최대 환경민원으로 지적됐던 경주희망농원의 축산폐수 문제<본지 2015년 4월 8일 보도 등>가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국가권익위원회가 한센인 집단마을인 희망농원에 대한 정주환경 개선을 약속하면서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폐수 문제도 함께 해결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8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주대영 대구지방환경청장 등과 함께 희망농원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정주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현장을 찾은 전 위원장은 “희망농원과 주변 주민분들은 40년이란 오랜 시간 동안 열악한 환경 때문에 고통받아 오셨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해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민분들의 고충과 불편을 덜어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희망농원은 경주와 칠곡에 있는 한센인 260여명의 자활을 위해 정부가 경주에 조성한 양계장 마을이다. 처음 위치는 현재의 보문단지CC였으나, 1979년 정부가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개발하면서 천북면 신당3리 일대로 한센인들을 강제 이주시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도내 가금류 집단지역 4곳 중 하나로 분류되는 이곳은 23개 양계농가가 모여 약 26만 수의 닭을 키우고 있다. 계사 면적만 총 29만여㎡에 이르는 대규모 양계단지지만, 현재는 계사 452동 중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상태다. 정화조와 하수관로가 노후화돼 악취 등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은 물론, 낡은 계사 시설 때문에 알을 납품해도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대부분이 운영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계사 등으로부터 흘러나온 축산폐수와 생활폐수가 포항시의 식수원인 형산강으로 흘러들어 지역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경주시가 이를 막고자 1998년 희망농원과 경주시에코물센터(당시 수질환경사업소)를 연결하는 300㎜ 오수관을 설치해 개선을 꾀했으나,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현재까지도 문제가 지속해 왔다.

이날 마을입구의 야외 침전조(정화조)를 확인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경악했다. 침전조에 저장된 잿빛의 악취 나는 폐수가 형산강의 지류인 신당천으로 흘러든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는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경주시는 올해 3월 희망농원 주민 대표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에 이 같은 취약한 정주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민원을 전달했다. 

국민권익위를 비롯해 경북도, 포항시, 대구지방환경청 등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현장 확인과 주민면담을 시도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했다. 이어 국민권익위와 경북도, 경주시, 포항시는 이날 현장조정 협약을 맺고 시설개선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번 협약으로 도와 경주시는 집단 계사 철거 150억원, 정화조 및 하수관로 정비 60억원 등 사업비 210억원을 정부 예산으로 확보해 시설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대구환경청은 하수관로 정비사업의 국비예산 지원의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철우 도지사는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한센인들의 특별한 희생이 있었다”며 “이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서 보상에 대해 노력해야 하고 오늘이 바로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오늘 현장조정회의를 계기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즉각 마련하겠다”면서 “현장조정회의에서 작성되는 조정조서는 민법상 화해의 효력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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