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노을.

얼마 전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멋진 노을을 보았다고. 그 자리에서 차를 세우고 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배고픈 남편이 차를 세우지 않고 통과해버려 아름다운 노을을 놓치고 말았다고.

문득 호주에서 살 때가 생각났다. 아침에는 학교에 다니느라 도시락 싸서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다녔었고, 주말에는 나를 먹여 살리느라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그래도 평일 오후에 집 근처 달링하버에서 산책을 할 때면 노을 지는 풍경을 가끔 바라보곤 했었다. 붉은 해가 뒷걸음칠 때면 그리운 가족들, 보고픈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울음을 삼키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엉엉 우는 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았던 거 같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면 그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었다. 여행할 때마다 해넘이를 보며 넋을 놓았던 것도 그때의 어린 내가 생각나서였다.

며칠 후,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나를 우울하고 멍하게 만들었다. 지인과 함께 노을을 보러 떠났다. 포항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칠포해수욕장 입구였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나다니던 바닷가였는데, 지인의 놀라운 관찰력과 세심함에 한 번 더 놀랐다. 지나가던 나이든 남자도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무덤덤한 아저씨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노을 명소 인가보다.

칠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에 노을이 내려앉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서산으로 귀가하는 태양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들의 발길을 사로잡고도 남는데, 그 모습이 강물에 반영돼 노을의 모습이 두 배가 되었으니 감동이 두 배였다. 바람 한 점 없어서 더 풍경이 아름다웠다. 강물이 바다에 진입하기 전에 또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고서 강이라는 이름을 반납하고 바다가 되었다. 오랫동안 말없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20대의 내가 40대를 준비하는 나에게 그동안 잘살았노라고 붉을 노을로 토닥여주고 있었다.

/엄민재(포항시 북구 삼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