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화면에 배치된 인물과 소품들, 그들의 동선에까지 경쾌한 리듬을 지닌다. 이 리듬은 완급의 조절과 멈춤에서 기인한다. 멀리 빠져 있던 카메라는 서서히 들어가는가 싶더니 과감하게 점핑해서 클로즈업하거나 더 들어가는가 싶더니 멈춘다.

완급을 가진 리듬에 음악이 깔린다. 이 음악은 그의 영화를 이끄는 속도를 따라 혹은 사건을 따라 배경이 되어 영화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끊임없이 분위기를 이끄는 음악과 완급을 가진 리듬에 대사는 넘치지 않는다. 절제된 대사는 이야기를 이끄는 필요한 만큼의 정보를 전달할뿐 구구절절하지 않다.

이는 무성영화의 형식과 흡사하다. 모든 대사가 자막으로 전달되던 무성영화에서 대사는 함축적이며 간명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그 배경에 음악이 깔려 분위기를 전달하며 결말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편집은 완급을 가진 리듬에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을 나눠주고 있으며, 친절하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관객이 이야기 밖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다. 영화 속 현재는 1980년대다. 그리고 1930년대와 1960년대 후반을 오간다. 이에 따라 화면 비율은 1.85:1, 2.40:1, 1.37:1을 오간다. 모두 해당 장면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에 주로 쓰이던 영화 화면 비율이다. 화면 비율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편집과 완급을 가진 영화의 속도와 경쾌한 음악으로 인해 영화가 시작되면 깔끔하게(?) 결말에 이른다. 깔끔하다는 것은 복잡한 전개구조와 갈등이 없으며, 복선과 암시로 인해 앞뒤의 사정을 되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경쾌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스타카토’와 같다. ‘스타카토’는 음악의 형식을 나타내는 기호로 해당 음의 길이를 줄여 짧게 연주하라는 악상기호이다. ‘스타카토’로 인해 선율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을 강조할 수 있다. 자칫 복잡해 질 수 있는 영화의 구성에 과감한 생략을, 멈추고 달리는 전개에 ‘스타카토’선율처럼 속도에 변화를 부여한다.

여기에 영화의 색감은 화려하고 선명하다. 세트와 등장인물의 의상, 소품까지 선명한 색감들을 가지고 있어 아기자기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색감은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되는 1930년대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호텔 외관과 몇몇 장면은 정교한 미니어처 세트를 만들어서 촬영했다. 이 영화는 허구이지만 193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에 몰아쳤던 광풍이 영화의 미술과 형식에 의해 아기자기하면서도 동화같은 느낌을 갖는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특징인 좌우대칭은 여기서도 등장하는데, 사물과 배경,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 등은 좌우대칭을 배경으로 들고난다. 이는 등장인물과 영화의 모든 미장센이 철저히 계산된 감독의 의도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 속에서 기저를 이루는 정서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유머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과 대사, 정서들은 모두 참혹한 전쟁과 함께 사라진 낭만과 예술에 대한 애수로 가득하다. 호텔의 품격을 위해 내려지는 일련의 지시와 주인공 구스타브가 유지하는 일련의 고집들에서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잔인하다. 그것이 다른 영화에서 행해졌다면 잔인함이 극대화되고 관객은 그 장면이 내내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잔인한 장면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 거기엔 화려한 동화같은 미장센과 리듬을 가진 속도와 속도를 가진 배경음악과 함께 유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유머에도 리듬과 속도가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위트. 멈추어 숨을 고르고 이어지는 잔인한 장면이 아닌 적절한 속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잔인한 장면 이후에 이어지는 흐름들이 완급을 조절한다.

현재와 과거, 과거에서 다시 더 먼 과거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는 복잡해질 수 있지만 시대에 따른 화면구성과 톤, 이야기 전달을 위한 영상 구성의 면밀함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밝고 경쾌한 음악과 환상적인 동화같은 배경이 시작되고, 우리는 적절한 리듬과 속도를 지닌 열차를 타고 종착역까지 지루할 틈없이 달려갈 것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